'소설/틈'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1.02.22 틈 - 에필로그 3
  2. 2011.02.22 틈 - 마지막화 4
  3. 2011.02.20 4
  4. 2011.02.17 2
  5. 2011.02.06 5
  6. 2011.01.26 5
  7. 2011.01.14 2
  8. 2011.01.10 2
  9. 2011.01.06 2
  10. 2011.01.03
소설/틈2011. 2. 22. 19:09
이 소설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처음 생각해 냈을때는 벌써 2년전의 봄으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그땐 많은것들이 불안했고 또한 많은것들이 무겁게만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마음속 깊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스스로에게도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던 때였죠. (이건 지금도 마찮가지일까요?;; ) 하루는 잠을 자다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아무 생각이나 마구잡이로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인물이 수진이란 인물입니다. 모든 남자들이 그러하겠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자신이 어떤 모습이라도 변함없고 한결같은 사랑을 주는 그런 사람을 생각해보곤 하지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든 현실속에는 이런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이런 설정 자체가 현실성이 다분히 떨어지게 되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것은 정말이지 좋은 일이지만 그냥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도 않고 자존심상할거 고민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마저 두려워 하고 또 과거에 얻었던 사랑에대한 여러가지 징크스라던지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행복해 한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만 가지고 있는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체적인 이야기를 좀더 현실적으로 사실적으로 만들수 없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스토리가 이 틈이라는 소설의 기본 스토리 입니다. 운명이나 행운이나 드라마틱해 보이는 사건과 사실들도 현실의 벽앞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거기에 조금더 현실적이면서 잔혹한 상황을 끼워 넣어 보면 어떨까란 생각으로 만든 이야기인것이죠. 
전체적으로 스토리 전개에서 반성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끝부분에 너무 속도를 내버린것도 그렇고.. 나이가 들어서의 연준과 수진의 심리를 묘사하는것도 많이 서툴렀습니다. 아직 제가 많이 어려서인지도 모르죠. 
정말 오랜 시간동안 한사람에게 비밀을 간직한체 같이 사랑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 그누가 생각해봐도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숨긴 긴 짝사랑을 해보았듯이 누구나 조금은 수진의 마음을 공감해볼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틈을 연재 했으니 이제 조금 한템포를 늦추고 새로운 이야기들로 나중에 다시 찻아 오겠습니다. 아마 개강하면 많이 바빠져서 새로운 소설을 쓰는데 무리가 있겠지만 종종 틈나는대로 떠오르는 이미지나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한편한편 써나가 보도록 할게요. 결말 부분에 수진을 찻아가는 연준이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수진이를 만나는 것까지 해볼까 하다가 거기 부터는 독자의 상상력에 맞기는 것이 더 좋을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처럼 다시 부부로 살아갈수 있을지 없을지도 보는 사람의 관점이 나 마음이 알려줄거라고 믿습니다. 해피엔딩이나 아니냐는 여러분이 판단하시면 좋을거 같네요. ^^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2. 22. 01:15
15. 돌아오지 않는 숲
조금씩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림을 들어올려서 벽에서 내리자 벽뒤에 작은 서랍장이 하나 있었다. 그 서랍장을 열어보니 100년은 되어 보이는 쾌쾌한 책이 한권 있었다. 한눈에 나는 그것이 아내의 일기장임을 알아 챘다. 우선은 문하생들의 눈을 피해 일기장을 가방안에 넣었고 문하생들이게 짦은 인사를 하고 나서 작업실 앞에 작은 호수로 향했다. 전에 아내를 위해 만들어둔 작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서는 일기장의 앞부분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일기장의 내용들은 너무나 나에게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연진이가 대학시절에 내가 만난 수진이라니.. 이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걸까. 서늘한 바람이 불어 왔고 긴 햇살이 온화하게 내리쬐고 있는 조용하고 잔잔한 호수앞에 앉아 있었지만 여기에 있는 내 시간은 뭔가 멈춰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아내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이자 내가 애지중지 키웠던 딸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나의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었다. 차근차근 마음을 다잡으며 일기장을 보았다. 일기는 우리가 만나고 수진이가 살았던 모든 일상들이 빽옥하고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분량도 너무 많아서 한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울 정도 였다. 해질녁까지 차분하게 일기를 읽었다. 건너뛸부분은 건너뛰고 보면서 어느세 마지막 부분까지 이르렀다. 일기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어제 쓴 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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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진이에게 모든것을 이야기 했다. 연진이는 많이 힘들어 했고 나도 그것을 격어 봐서인지 연진이가 많이 안쓰러웠다. 이제부터 수진이로 살아야 하는 내딸 연진이.. 내가 처음 엄마에게 그말을 듣고 나서 밤세도록 고민했을때 들었던 생각은 내가 과거로 가지 않는 다면 어떻게 될까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아빠는 엄마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겠지.. 그리고 언니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거고 나는 이렇게 따스하고 좋은 부모님과 살수도 없었겠지. 너무 소중한 언니와 이렇게 행복한 자매로 살아 볼수도 없었겠지. 그런생각들이 들면서 이제는 부모님도 언니도 다시는 볼수 없게 되겠지만 그 누구도 죽은것도 아니고 영영 못만나는것도 아니고 분명히 언젠간 다시 만날수 있는 사이란걸 마음 한켠으로 계속 기대해 볼수 있지 않을까. 어린 나는 그런 생각들에 꽉 차있었고 어느정도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자신감에 차있었던거 같았다. 실제로 그후에 그런 자신감을 유지해 나가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연진이에게 이야기 할수만은 없었다. 
과거로 돌아갔을때는 엄마가 작업을 했던 작업실 앞 호수 근처였다. 실험 장비를 세팅해 두었던 그대로 연구소에서 약 2키로 정도 떨어진 작업실.. 그때는 작업실도 없었고 그냥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때부터 어린 나는 모든걸 스스로 해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고 외롭고 쓸쓸한 시간들을 지나 대학에 오고 사람들을 만나고 중간에 회사도 다니면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일년이 지나고 삼년이 지나고 점점 그곳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차차 잊어갔던거 같았다. 남자친구도 사귀고 친구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명절이나 휴일에는 많이 외로웠지만 그것도 조금은 견딜만 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에 처음으로 아빠를 만났다. 연준.. 그는 역시나 생각대로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한눈에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던 아빠란걸 알았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서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랑 친해질까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엄마가 준 일기장을 열어보면서 나는 미래에 일어날 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물런 모든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지만 내가 특별히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흘러 갔다. 처음엔 연준이란 사람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연준이란 사람은 내가 알던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란걸 알게 되었다. 어딘가 날카로웠고 어딘가 삐딱했다. 그로인해 나도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마음도 많이 아팠다. 그는 너무 어둡고 차가웠다. 몇일씩이나 힘들어했었다. 그를 만나러 과거로 왔는데 그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가 아마 가장 힘들었던때가 아니었을까... 그때 가장 서러웠던거 같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너무 보고싶었다. 그 모든것들을 포기하고 저 사람을 위해 여기 까지 왔었는데.. 너무 억울하고 아팠다. 결국 그를 포기하고 잘 살아보기 위해 노력했다. 오래 전부터 나를 좋아해주던 사람도 있었고 주변사람들도 너무 좋았다. 뭐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선배를 만나면서도 마음 한컨이 많이 공허 했다. 선배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선배를 만나면서 한순간도 내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것은 연준이라는 사람때문이 아니라 그 인기도 많고 항산 학과에서 여자들에게 분란을 만들었던 선배 스스로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재밋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끔씩은 그의 달콤한 말들도 진심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을때쯤.. 선배와 헤어지게 되었다. 다시 만난 연준이라는 사람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를 만나지 못했던 시간동안 그 안에서 뭔가 심경의 변화들이 있었나 보다. 그랬다. 그제서야 내가 알던 연준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연준오빠의 서툰 행동들, 표현들을 보면서 이 사람에게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를 만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이었고 나 또한 그런 한결같음을 가지고 그를 대해 갈수록 그는 나에게 좀더 마음을 열어 갔다. 중간중간에도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엄마가 왜 아빠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모든게 행복하게만 따사롭게만 지나게 될줄 알았던 나의 마음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던건 내딸 연진이가 사춘기를 지날 무렵부터 였다. 연진이가 조금씩 모든 기억과 완성된 인격을 만들어 갈수록 나 스스로가 연진이에게 자꾸 겹쳐 보이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남편은 자꾸 아버지의 모습에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몇십년간이나 잊어버리고 지내던 혼란들이 다시금 나를 찻아왔다. 더욱이 주현이를 볼때마다 더 혼란이 커져만 갔다. 내가 낳은 사랑스런 딸이지만 주현이가 커갈수록 자꾸 어린나를 손잡고 데리고 다니던 언니가 생각났다.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시아버지나 시어머니 같은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고 시누이 같은 동생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연진이가 오늘 나에게 엄마는 행복했었냐고 말했을때 자신있게 말했지만 조금은 주저할수 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도 이미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은 이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동안 남편에게 티내지도 이야기 하지도 못했지만 스스로 너무 힘들었다고 좀 도와달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수가 없다. 주현이한테도 미안하고 남편에게도 미안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난 분명히 견디지 못할것이다. 힘들다...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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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기는 끝이나 있었다. 난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체로 그녀의 사랑을 한없이 받기만 했었다. 그녀는 이 모든일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크게 힘든 내색 한번 안하고 잘 살아 왔던거였다. 내가 너무 나약했고 내가 너무 그녀를 몰랐다. 일기장을 덥고 주변에 낙엽과 나무를 모아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곤 미련없이 일기장을 불속에 던져 넣었다. 이것을 혹시라도 어떻게든 주현이가 보게 된다면 아마 연진이보다 나보다 아내보다 주현이가 너무 힘들어질거란 생각이 들어서 일것이다. 그리고 우선 주현이 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 어디에요? "
"아빠 잠깐 엄마 작업실에 왔었어.."
"엄마는 찻았어요? 연진이는요?"
"주현아 조금만 더 기다려 아빠가 꼭 엄마 찻아가지고 올게.. 엄마 어디있는지 아빠가 알거 같아."
"정말요? 아빠만 믿을게요. "
그후로 조금더 주현이를 달래고 차에 올라 탔다. 아내가 갈곳은 아마 한곳밖에 없었을거다. 아마 우리와 나이가 비슷할거라고 생각되는 그녀의 친부모일것이다. 내가 그녀라면 분명히 그곳을 먼저 갔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아내에게 연진이의 친부모에 대해서 들어 본것은 많지 않지만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사는지는 다행이 내가 따로 알아본바가 있었다. 우선 무조건 남쪽으로 속도를 냈다. 아내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무엇이 되었던간에 아무일 없었던거처럼 미소지으면서 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 힘들어하라고.. 힘들면 같이 힘들어 하자고, 그렇게 이야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것에 차갑고 날카롭게 삐딱하던 내 모습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끝,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2. 20. 22:33

14. 평행우주
처음으로 눈을 떳을땐 병원 응급실 안이었다.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렸고 시야도 희미했다. 사물들의 촛점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평평 울고 있는 주현이었다. 주현이 얼굴을 보자 미소가 지어졌다.
"주현아, 병원이야?"
"네. 아빠. 어떻게 된거에요. 이게.. 뭐에요. 엄마는 연락도 안되고 연진이도 어딧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주현아 일단 진정해 아무일도 없어. 아빠 괜찮아. "
옆에는 주현이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학생이 한명 서있었다. 
"자네.. 그래.. 인사는 나중에 하고 지금 내 담당의를 불러줄수 있겠나?"
"안녕하세요. 네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희멀거 해보이는 외모보다 믿음직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었다. 
"주현아 연구소는 모두 내려 앉은거니?"
"네.. 다.. 다 타버렸어요.."
"오늘 무슨 요일이야?"
"월요일이요. 딱 하루 종일 의식이 없었어요."
일단 감각이 닿는 몸 구석구석을 체크해봤다.  뒷머리쪽이 조금 따끔한거 말고는 아무곳도 크게 아프거나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마침 주치의가 왔다. 의사는 차트를 들어올리자 허공에 순식간에 내 몸의 내부 장기구조와 신체 해부도를 3차원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환자분 의식이 돌아 오셨군요. MRI와 중성미자산란 검사결과 딱히 뇌와 다른 신체에 이상이 있는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외과적 소견상으로는 머리 뒷쪽에 타박상과 조금 찟어져서 생긴 출혈말고는 크게 다치신 곳은 없지만, 큰 충격을 받으셔서 몇일 병원에서 쉬시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할것 같군요. "
"아닙니다. 지금 당장 확인해봐야 할일들이 몆가지 있어서요. 괜찮으니 지금 당장 퇴원 하겠습니다. "
"그러지마요. 아빠. 의사 선생님 말대로 몇일 더 쉬세요. 엄마랑 연진이는 일단 실종 신고해놨어."
"아니야. 일단은 찻아 봐야겠어. "
사고현장에 아내가 있었다는 말을 하면 주현이가 너무 충격을 받을거 같아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멀정하게 걸어서 건물에서 나왔던걸 봤으니 무사한건 확실했다. 아내는 무사한데 왜 지금 여기 없는 것일까. 그리고 연진이는 왜 또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을까. 우선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거칠게 링거를 뽑아내고 입고 있더 옷으로 갈아 입었다. 
"아빠 어디가시려구요. 가지 마세요.."
"주현아.. 집에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빠가 엄마랑 연진이랑 금방 찻아가지고 올게.. 자네도 이제 괜찮으니 집으로 돌아가 보게나.. 아니면 주현이 곁에좀 있어주게."
이야기 하자 마자 서둘러 일어나 차에 탔다. 어디부터 가야할까.. 어디를 가야 아내와 연진이를 찻을수 있을까. 다쳤던부분이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당장 아내의 작업실로 차를 몰았다. 분명 아내가 갈만한곳은 그곳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몇십분 차를 몰고 아내의 작업실에 도착하고 금방 인기척을 느꼈다. 꼬리를 흔드는 개를 외면하고 서둘러 작업실문을 열었다. 안에는 학생으로 보는 두남여가 물건들을 옴기고 있었다. 전에 몇번 만난적이 있는 아내의 문하생들이었다. 
"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금은 어려보이는 여자문하생이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어. 오랜만이네요.. 혹시 내 집사람 봤어요?"
"선생님은 두시간전쯤에 여기 들리셨다가 바로 나갔는데요?"
"어디로 간다고 말이라도 하지 않았나요?"
"따로 남긴 말은 없구요. 완성한 남은 그림들 모두 갤러리로 좀 옴겨달라고 부탁만 하고 가셨어요."
아... 한발 늦었다. 도데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다. 
"선생님 어디 다치셨어요? 안색이 안좋아 보여요. "
"아.. 아니 괜찮아요. 미안한테 나 물한잔만 가져다 줄수 있나요?"
사고가 났을때 출혈이 있었는지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를 가서 아내를 찻는단 말인가. 우선 학교에 전화를 해봤다. 연진이의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연진이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혹시 연진이가 학교에 가 있나 해서요. "
"오늘 연진이가 결석이네요. 연진이 무슨일 있나요?"
"아.. 아니요. 별일 아닙니다. 갑자기 연락이 안돼서요. 죄송하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
갑자기 더 마음이 급해지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여기 물이요."
"아 고마워요." 
일단 웃으면서 물잔을 받아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조금 마음이 안정되고 정신이 돌아왔다. 눈을 돌렸을때 아내가 그린 그림한장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큰 그림에는 검은색 가디건을 입고 짦은 청치마에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마치 대학생 같아 보이는 연진이가 밝게 웃으면서 조금은 어려보이고 커트 머리에 너플거리는 치마를 입고 슬픈 듯이 눈물을 흘리는 조금은 어려보이는 연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 제목이 뭔가요? 성장인가요?"
"아.. 아니요. 이 그림의 제목은 운명이에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
그림과 남은 도구들을 나르던 다른 남자 문하생이대답했다. 뭘까.. 뭘까.. 내가 뭔가 큰틀에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 밑부분을 보니 사진이 두장이 붙어 있었다. 한장의 사진은 내가 아내와 대학시적에 유원지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었고 또한장은 얼마전에 가족여행 갔을때 녹차밭에서 주현이가 연진이를 찍어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순간 순식간에 내가 놓치고 있는 그 어떤것이 무엇인줄 알게 되면서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워지고 소름끼치게 몸이 차가워 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들이 내몸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두장의 사진안의 수진이와 연진이가.. 같은 사람인 것처럼 닮아 있었다. 분명 그둘은 피한방울 안섞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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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오늘은 아침에 동아리 활동을 갔다가 오고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저녁을 준비한다.  아빠는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미리 장까지 봐온거 보면 참 다정다감한 아빠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칼쓰는 건 엄마가 할테니까 조심하라고 하면서 자꾸 주방에서 나를 내쫒으려고 한다. 이상하게도 집안에서도 나는 엄마랑 더 친하고 언니는 아빠랑 더 친하다. 아빠가 싫다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알수없게 아빠가 어려워서 언니처럼 애교도 부리고 살갑게 행동하지를 못한다. 오늘 아침에 아빠를 안아준건 나름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엄마는 언니한테도 잘해주지만 나한테는 더욱이 잘해준다. 하지만 언니보다 나한테 더 엄격해서 음식하는 것이나 청소하는거 빨래 하는 것은 꼬박꼬박 가르치면서 못하면 막 뭐라고 한다. 나중에 시집가서 어떻게 살거나면서 말이다. 아직 시집갈려면 10년도 넘게 남은거 같은데.. 너무 한다.. 언니한텐 그러지도 않으면서.. 음식이 얼추 되갈때쯤 언니도 금방 학교에서 돌아왔다. 대학생이면 시간도 많을 텐데 좀 일찍일찍 다니지는.. 못됬다.. 그렇게 오랜만에 엄마 아빠 언니랑 밥을 먹고 재밋게 이야기도 했다. 언니는 얼마전에 사귄 남자친구 자랑을 했다. 난 아까부터 아빠 표정이 굳어가는걸 확인했는데.. 언니는 눈치도 없다. 아빠는 연구소에 두고온 물건이 있다고 금방 나갔고 언니는 약속이 있다고 또 금방 나갔다. 아빠가 있었으면 못나가게 했을텐데.. 쳇... 
늘 그렇지만 또 집에 엄마랑 나랑 둘만 남았다.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리모컨을 들더니 갑자기 티비를 껏다. 그리고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연진아 엄마가 연진이한테 좀 할이야기가 있어. 여기 좀 앉아보렴."
"무슨일인데 엄마?"
"연진아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이야기 잘들어야해."
"엄마 혹시 엄마랑 아빠가 친엄마나 친아빠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려는 거야? 나 그거 알게된지 조금 됬어.. 그거 때문이라면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 난 항상 엄마랑 아빠가 진짜 내 엄마 아빠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어. 엄마랑 아빠도 실제로 내가 엄마아빠의 친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엄마는 웃으면서 
"아이구 우리딸 많이 컷네.. 엄마가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그런데 엄마가 하려는 말은 그런게 아니란다."
"응 그럼 뭔데?"
"연진이도 이제 19살이구. 많이 컷으니까 엄마가 하는 말 무슨말인지 잘 알아 들을거야. "
그러면서 엄마는 커다란 책한권을 나에게 주었다. 그 책은 조금 오래 되어 보였지만.. 난 한눈에 엄마가 가끔씩 쓰던 일기장임을 알았다. 
"이거 엄마 일기장이잖아. "
"응 그리고 이것도 받아."
라고 하면서 가방을 하나 건네었다. 가방안에는 몇덩어리의 금괘가 들어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이런거 어디서 났어?"
"엄마가 그림 그리면서 모은 돈으로 산거야."
"이건 왜 나한테 주는건데?"
"자.. 엄마말 잘 들어봐. 내일 연진이 하고 엄마는 아빠 연구소에 갈거야. 그리고 아빠가 만든 기계를 작동시킬거야. "
"왜?? 거기 막들어가면 위험하다고 아빠가 그랬잖아. "
"내일 연진이는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없는 먼곳으로 떠나야해."
"엄마 아까부터 무슨말이야.!!"
난 갑자기 화가나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내 목소리에 놀래는 기색마저도 없었다.
"우리 딸은 아빠가 만든 기계를 통해서 지금부터 30년전 과거로 갈거야. 그리고 거기서 연진이는 김연진이 아닌 신수진을 살아야돼.."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엄마가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 할수가 없었다.
"왜?? 왜 가야돼는데? 왜 내가 내가 아니라 엄마로 살아야 하는데? 엄마 뭐라고 말좀 해봐!!"
엄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연진이가 무슨 마음인지 엄마도 잘알아 엄마도 예전에 엄마였던 나 자신한테 그말 들었을때 충격이 많이 심했어."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일찍 돌아가신거 아니야? 그렇다고 그랬잖아.."
"미안.. 그거 거짓말 한거였어. "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울음으로 바뀌면서 목이 매어가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는 눈을 꽉 감으면서 감정을 금세 진정시키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일기장 엄마가 그동안 쓴거야. 이거 가지고 있으면 거기서 생활하는데나 연준이를 만나는데나 친구들 사귀는데 도움이 많이 될거야. "
"나보구 거기서 아빠를 만나라고? 무슨말이야.. "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쏫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갑작스러운거 엄마도 잘 알아.. 연진아. 지금 너무 겁날거야. 알지도 못하는 30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지금 엄마 아빠 언니.. 친구들이랑 헤어져서 이제는 다시 보지도 못하는게 너무 힘들거야. 엄마는.. 연진이한테 강요하지 않을게.. 연진이가 잘 생각해봐. 잘 고민하고 결정해봐. 지금처럼 엄마랑 아빠랑 언니랑 살면서 행복하게 살아도 돼 아무도 널 탓하지도 않을거고 너가 뭔가를 잘못한것도 아니란다. 그리고 너가 과거로 가지않음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아마 너도 나도 너희 아버지도 모를거야. 오늘 밤에 잘 생각해보고 아침에 엄마한테 알려주렴. "
"엄마 나 궁금한게 있어..  엄마는 지금까지 이렇게 아빠를 만나고 사는게 정말 행복했어?"
그러자 엄마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이야기 했다. 
"그럼 엄마는 아빠랑 만나서 연애를 하고 사랑스러운 주현이를 낳고 연진이를 얻어서 키우면서 정말 행복했단다. 엄마는 다시 이런 선택이 와도 다시 이 선택을 할거야. "
엄마의 말을 듣고 머리속이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엄마가 한 말들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엄마가 방금 했던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장난친거였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난 서둘러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계속 누워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30년 전은 어떤 곳일까. 역사 책에 나온 것처럼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는 곳일까? 거기가면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을텐데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엄마랑 아빠랑 언니가 너무 보고싶으면 어떻게 하지? 친구들한테는 뭐라고 그러지? 온갓 생각에 잠혀 있을때쯤 아빠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아침. 아빠는 자고 있었고 엄마는 일찍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밤새도록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다가 세벽녁이 되서야 조금이나마 잠을 잘수 있었다. 엄마에게 가서 가겠다고 이야기 했다. 너무 무서워서 팔다리가 부들부들떨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면서 등을 천천히 쓰러 내리면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가.. 괜찮아..' 라고 이야기 했다. 조금 지나서 떨림들이 멈추기 시작했고 마음이 굳기 시작했다. 아빠와 언니가 일어나기 전에 엄마와 나는 서둘러 짐을 쌓다. 언니가 일어나서 씻고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있는지 화장을 하고 있다. 내가 가장 아끼던 옷도 오늘은 그냥 언니에게 줬다. 언니는 영문도 모르고 기뻐했다.  언니가 나가려고 현관문쯤 갔을때.. 난 웃으면서 
"언니 데이트 잘하고 와~"
 라고 이야기 하면서 언니를 꼭 안아줬다. 
"오늘 무슨 날이야? 애가 왜이래?"
라고 하면서 웃었다. 나는 웃고 있는 언니의 모습을 잊어 버리지 않으려고 몇번이나 언니의 모슴을 머리속에 세겨넣었다. 이별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언니가 너무 보고싶어졌다. 
조금 있다가 아빠가 일어나셔서 쇼파에 앉아 계신다. 아빠를 위해 마지막으로 커피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실수로 컵을 깨뜨렸고 아빠가 놀라서 달려왔는데.. 난 좀처럼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아빠는 급한일이 있는지 먼저 나가고 엄마와 함께 밖으로 나가 차를 탔다. 금세 아빠의 연구실에 도착하고 엄마는 실험실에 나를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는 빠진 물건이 없나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나를 꼭 안아주면서
"엄마 연진이가 너무 보고 싶을거야.. "
"나도 엄마가 너무 보고싶을거야... "
엄마와 나는 한참이나 서로를 안고 울었다. 엄마는 밖으로 나가고.. 나는 기계의 스위치를 올렸다. 기계가 작동을 하면서 조금은 무서운 소리들을 내기 시작했다. 가운데 차가워 보이는 파란색 물결같은것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그것의 크기는 조금씩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물결은 순식간에 내몸을 감쌓다. 





이번화로 연재를 마치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한편을 더 써야 겠습니다.  이안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 보다 너무 어렵네요.
요즘은 20대 초반때보다 감성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노력을 하고 해봤는데 쉽지가 않네요.
캐릭터들에게 몰입할수록 저 스스로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다소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욕먹을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을 실어 주세요.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2. 17. 23:07

13. crack
매일매일 맞이 하는 아침이지만 어떤 아침은 여느때와 다른 느낌을 줄때가 있다. 오늘 샤워하고 나와서 거울앞에서 섰을때가 그런때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새 머리에 흰머리가 많이 늘었고 이마와 눈가에도 주름이 많이 늘었다. 나이가 쉰이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늙어간다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런것들일것이다. 식탁으로 가서 어제 끓여놓았던 찌개를 끓이고 어제 만들어 놓았던 갈치 조림도 데운다. 반찬도 내고 밥도 뜨고 밥먹을 준비가 다 될때쯤 큰딸 주현이의 방에 갔다. 아직도 푹 자고 있다. 어제 기억에 오늘은 오전 수업이 없다고 했던게 기억 나지만 그래도 아침은 먹이는게 좋을거 같아 조금씩 흔들어 깨웠다.
"주현아 일어나서 아침먹어."
"아빠. 오늘은 아침 안먹을래요."
어제 좀 늦게 자는거 같더니만 레포트쓴다고 바빳나보다. 모르는게 있으면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했지만 무슨 고집인지 잘 물어 보지 않는다. 큰딸 깨우는건 포기 했고 고등학생인 둘째딸 연진이를 깨우러 연진이 방에 갔다. 
"연진아 학교 가야지 얼른 일어나."
"아. 벌써.. 일곱시에요? 네.."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아직 잠이 많을 나이의 연진이. 곧 연진이와 같이 식탁에 앉는다. 애교있는 주현이와 달리 조금은 무뚝뚝한 연진이는 아빠인 나보다 집사람이랑 더 가깝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내딸. 갈치에 가시를 발라서 딸 밥에 올려준다. 
"어머니는 어디 갔어요?"
"엄마는 전시회 준비한다고 어제 작업실에서 안 돌아왔어. "
꼬박꼬박 아침도 잘 먹고가는 연진이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래도 연진이가 다행인건 학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곧잘 나에게 이야기 해준다는 것이다. 먹은것들을 치우고 주현이가 일어나서 먹을 음식들을 조금 내놓는동안 연진이는 학교갈 준비를 마쳤고 나도 옷을 금방 갈아 입었다. 
오랜만에 차를 타고 연진이를 학교 앞까지 태워주고 난 연진이에게 용돈을 조금 주었다. 살짝 웃으면서 날 꼭 안아주는 연진이, 말수가 많진 않지만 확실히 귀여운 면이 있다. 주현이는 내가 막 직장을 가지게 되었을때쯤 수진이와 결혼하고 얼마 안되서 낳은 큰딸이다. 처음 주현이를 낳고 아이를 더 가질 계획을 생각했지만 아내가 꼭 둘째애는 입양하자고 해서 좀 오래 고민해보고 수진이가 아는 지인을 통해서 입양을 하고 연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주현이가 동생 연진이를 안고 웃던 모습은 아직도 너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늘상 그렇듯 아이들 키우고 내일 하면서 살다 보니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감을 통감한다. 어리던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큰애를 보면 딸 잘 키운게 뿌듯하다. 연진이는 여전히 자신이 우리의 친딸인걸로 알고 있고 그게 더 좋을거 같아서 아내와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행이 같이 살면 닮는다고 했나 크면 클수록 아내와 많이 닮은 모습의 연진이를 보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에 왔다. 요즘 하는 일은 국가 연구소에서 조금 독특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뭐 대단한것은 아니고 될듯 안될듯 한 부분이라 펀드를 지원해 주는 쪽도 그렇게까지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거 같았다. 아직 이론적으로 완전히 증명된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실험적으로 이루어 져서 어느정도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아직은 실험적으로만 완성된 부분이라선지 컨트롤이 어렵고 조금 불안정하다. 일단은 장비세팅은 대충 끝났고 몇번도 실험해보고나서 발표할예정이다. 이 장비는 어떤 사물을 일정거리정도 공간을 이동 시키는 장비로써 아직 단점은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고 정확히 타겟이 어디로 이동할지에 대한 불확정성이 좀 있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적인 효과를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아직은 무리가 많다. 
하루 종일 내일 실험 세팅들을 하고 차를 타고 수진의 작업실에 갔다. 수진의 작업실은 집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산속에 내가 편백나무를 심어 놓았던걸 잘라서 만든 오두막 같은 곳이다. 언제나 그집에 들어가면 향기로운 나무향기가 났다. 조그마한 벽난로가 있고 마당엔 개도 한마리 키웠다. 늘.. 생각 했던것이 나중에 딸들 시집가고 퇴직하게 되면 집을 좀더 증축해서 아내와 조용히 살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높은 천장의 방에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수진을 보았다. 아내는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그리던 작품을 거의 완성한것 처럼 보였다. 같이 집에 들어가서 내가 미리 장본 재료들로 수진이가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현주에게 전화해서 오늘 저녁먹으러 꼭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이야기 했다. 연진이는 학교가 끝나고 이미 집에 일직 들어와 있었다. 그래도 고등학생이라고 자기딴엔 다 컷다고 생각했는지 엄마랑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있는걸 보면 참 예쁜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주현이가 왔고 그래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같이 저녁을 먹었으면 했어서 내가 이야기 한것이다. 주현이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했고 조심스레 남자친구가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저. 남자친구 있어요. 이제 막 복학한 동기 남자애인데.. 예전엔 몰랐는데 많이 어른스럽더라구요.  만난지는 석달쯤 됬어요." 
주현이는 조금 부끄러운듯 이야기를 했다.
"우리딸 능력있네. 같은 과야? 아빠랑 엄마랑도 그렇게 만나서 결혼두 하고 그랬잖아."
아내가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난번에 집앞에서 보던 친구가 그 남자친구인 거야?" 
의도한건 아니지만 조금 퉁명스럽게 내가 이야기 했다. 
잘 키운딸이 남자친구가 있다는게 조금은 질투가 났지만 그래도 석달이나 사귀었는데 집까지 데려다 주는거 보니 잘해주는거 같아서 안심하긴 했다. 
오늘은 아닌거 같지만 요즘 부쩍들어 아내가 얼굴이 많이 어두워졌다. 아마 연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였던거 같은데 무슨일이 있는건지 무슨 고민이 있는 건지 삼십년을 가깝게 만나고 있는 나로서도 아직은 모르겠는 부분들이 많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흔들림도 없고 밝았던 사람이 이러는걸 보니 처음엔 갱년기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이럴수록 내가 더 노력 해야겠지만, 어찌됬던 오늘의 아내는 다른때 보나 많이 밝았고 잘 웃었고 참 행복했다. 식사하고 과일도 먹다가 갑자기 연구실에 두고온 물건이 생각 났다. 잠깐 나간다고 하고 연구실에 돌아왔다. 연구실 몇몇 대학원생들은 여전히 열심히 실험 중이다. 한 학생이 장비 설정 프로그램을 설정하는데 애를 먹고 있길래 조금 도와주었다.  웬만하면 이런 테크닉한 부분들은 스스로 해결하게 하려고 하지만 몇일째 집에도 안 들어가는 몇몇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금방 들어간다는것이 어느세 한시를 넘어 버렸다.  학생들에게 내일은 건물 전체가 정전이니 쉬라고 이야기를 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역시나 집에 들어오니 이미 아내도 딸들도 모두 잠들어 있었다. 
다음날 점심쯤이 되어서야 나는 조금 늦게 일어 났다. 휴일이라 연진이도 학교를 가지 않고 있었고 아내가 점심을 하고 있었다. 주현이는 약속이 있다고 오전에 집을 나간듯 해 보였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를 내려서 아내와 마셨다. 연진이가 컵을 내오다가 컵을 깨뜨렸다. 너무 깜짝 놀라서 서둘러 유리조각들을 내가 치웠다. 
"연진아 왜그래? 어디 안다쳤어? "
"네.. 안다쳤어요..."
라고 이야기 하고 했지만 웬일인지 연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우리 딸 왜그래? 무슨일 있었어? "
라는 내말에 연진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했지만 바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구만. 왜그래 우리딸.."
바로 옆에 아내가 서있었다. 무슨일인지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던 슬픈 눈으로.. 
"여보 내가 좀 연진이랑 이야기 하고 있을게. "
때 마침 전화벨이 울리고 연구실 동료로부터 상의 할게 있으니 잠깐 만나자고 했다. 갑자기 연진이가 그러니까 마음이 많이 불안햇지만 아내가 잘 이야기 해줄거라고 믿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동료가 나와있었다. 
"무슨일인데?"
"아니 다른게 아니라 지난번에 실험치 계산 했던 사람한테 메일이 왔는데 중간에 틀린부분이 있더라고.."
"응? 정말?"
"아마 지금 세팅대로 실험하면 space distotion 이 심해서 에너지가 세서 폭팔할지도 모르겠더라구. "
"그럼 질량에 비해 세팅이 강하게 되있는거네? "
"아무튼 급한일 인거 같아서 형 불러서 다시 계산해볼라고 그랬지. "
"아무튼 다행이다. "
혹시 모르니 어서 연구실에가서 세팅을 낮추어 놔야겠고 생각을 했다. 정전이긴해도 누군가가 와서 혹시라도 장비를 가동시키기라도 했다가는 큰 폭팔로 이어질게 뻔했기 때문이다.  계산을 마치고 서둘러 차를 운전해서 실험실로 향했다. 창문을 열고 주말 오후의 따뜻한 공기를 맞으며 조금은 여유롭게 달렸다. 설비 점검차 건물 정전이었던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집에 두고온 연진이가 걱정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수진이는 현명한 여자니까 딸을 잘 달래고 우는 이유가 뭔지 잘 알아내서 잘 다독였으리라 믿었다. 분명 남자인 나는 모르는 여자들만의 어떤 고민일수도 있는 거니까. 
연구실에 다 다다랐을때 주차장에 낮익은 차한대가 보였다. 아내의 차.. 어떻게 된거지? 내가 나가서 찻으러 왔나? 그렇다면 분명히 나한테 연락을 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웬지 모를 불길한 마음에 서둘러 차를 대고 차문을 여는순간..
꽝! 하는 폭음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고 건물의 유리창들이 깨지면서 창틀이 통체로 뜯겨져 내렸고 연구동은 순간 화염에 휩쌓였다. 뜨거운 공기와 충격파가 나를 휩쓸었고 순간 몸이 날아 올라 주차장 뒤에 가로수에 부딧쳤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온몸이 타는듯이 쑤셔왔다. 머리를 부딧쳤는지 조금씩 의식이 희미해졌고 폭팔이 일어난 건물쪽에서 차분하게 아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난.. 곧.. 의식을 잃었다...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2. 6. 19:49

12. EPR paradox
 갑작스런 휴가가 생겼다. 교수님께서 잠깐 해외로 학회를 가시는 것도 그러했지만.. 갑작스런 연휴도 생기기도 했고 해서 쉴만한 시간이 생겼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이런 따사로운 봄에는 나들이를 하지 않으면 왠지 날씨에게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못본 친구들을 만날까? 아니면 오랜만에 학과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잔 마실까 하다가 그것도 아닌거 같아서 생각을 멈췄다. 일단은 햇빛이나 쬐면서 생각을 해봐야겠어서 건물 밖으로 나와 나무 밑에 들어가 나무에 기대 서있었다. 건너편 잔디밭에 학과 후배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모여 낮술을 마시고 있다. 다른 학과 사람들이 보기엔 좀 야만스러운 풍경일수도 있지만 학과내에선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요즘은 그나마 그런 사람들도 별로 없기 때문인지 더 재밋어 보였다. 그래도 내가 학과에선 좀 고학번인지라 쉽게 자리에 끼지 못했지만 그냥 보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밋었다. 확실히 내일부터 연휴란것과 거기서 풍겨오는 여유로움이 기분 좋았다. 갑자기 따뜻한 바람이 불었고 기분이 좋아서 후배들에게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주었다. 그래봐야 탕수육 정도이지만 그래도 후배들은 좋아했다. 잠시 자리를 차지하고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재밋게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터덜터덜 학과방향으로 걸어들어왔다. 
조금씩 땅만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수진이가 보였다. 수진이게 너무 미안한 일이지만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수진이는 나에게 몇마디 말을 걸려고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시선이 내려가 버린다. 조용히 더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안했다. 그렇게 밖에 못하는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더이상 다가가지도 잡지도 않는 나에게..
학과 복도에서 승현이를 만났다. 
"연휴동안 뭐할거야?" 라는 승현이의 물음에
"여행이나 가볼려구." 라고 대답했다.
"혼자? "
"응."
"그래, 머리좀 식히고 와. "
승현이는 마치 나에게 있던 일을 알고 있는듯 가볍게 이야기 했다. 확실히 승현이가 눈치가 빠른 편이어선지 더이상 묻지 않는게 고마웠다. 
잠깐 집에 들러서 짐을 쌓다 한 삼일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짐을 쌓다. 여행은 짐이 가벼워야 가볍게 떠나고 고행을 안한다는 생각에 맞춰서 말이다. 카메라도 챙기고 간단한 여비도 인출했다. 일단은 아무생각 없이 역에 들려서 남쪽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가장 빠른 호남선 기차가 있었고 광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큰변화 없이 지나가는 창밖에 풍경에 평일 낮 열차는 한산하기만 했고 점점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금방 창밖의 풍경이 질려가기 시작했다. 점심이 공복인지라 열차카폐에서 탄산음료와 달걀을 사와서 먹었다. 통일호가 없어진 이후 무궁화열차는 생각보다 많은 역에서 정차를 하였고 기차는 좀더 느릿느릿 움직였지만 특별한 행선지도 급할것도 없는 나로선 크게 신경 쓸만한 일은 아니었다. 
잠깐 자다가 일어나니 익산에 와있었고 한시간쯤뒤에 금방 광주역에서 내렸다. 이미 해는 졌고 별생각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에 워크샴 들으러 왔을때 갔던 숙소가 생각나서 전남대학교 근처에서 내려 가까운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엔 학생들이 많았고 놀랄만큼 저렴한 가격의 맛있는 콩국수를 먹었다. 고소한 맛에 설탕을 평소먹던것보다 조금 많이 넣었다.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쌀쌀한 공기를 마시며 대학의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익숙한 사투리와 뭔가 많이 재밋어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걷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다리를 쉬고 있는데 눈앞에 우연히 고등학교때 친구를 만났다. 너무 반가워 한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술을 한잔 하기로 하고 근처 술집에서 술을 기분좋게 마시고 그날은 친구의 자취방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곳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친구에게 해장국을 사주고 또 만날 때를 약속했다. 그땐 이곳이 아닌 고향에서 겠지만..
다시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은 생각한것보다 너무 커다란 모습이었다. 수십개의 승강장이 있었고 어디로 떠날지 곰곰히 고민하고 있었다. 고향근처로 가서 좀 유명햇던 명승지로 갈까.. 아니면 한번도 안가본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드라마에서 나왔던 그 섬에 가보고 싶어졌다. 아무생각없이 완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터미널에서 먹은 햄버거 때문인지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금세 해남쯤을 지나고 있었다. 이내 익숙한 조용한 시골풍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넓은 들과 높은 산들은 없어지고 낮은 구릉들만 눈에 보였다. 완도 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릿한 바다물 냄새가 났다. 낯선 곳이었지만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항구에서 조그마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아저씨가 배표를 팔고 있었다. 청산도의 배표를 사고 조용히 부두에 앉아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낙타의 등갇은 섬들이 줄줄이 구비구비 머물고 있어서 완전한 수평선의 바다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바다를 그 섬들이 품고 있어서 바다가 아니라 조금 큰 호수처럼 보일정도였다. 곧 배가 왔고 한 삼십분정도 배를 타자 금세 청산도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니 생각보다 섬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택시를 탈지 버스를 탈지 고민해봤지만 그런게 짦은 시간에 있을리가 만무했다. 몇시간동안 기다리기도 뭐해서 운동삼아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풀냄새와 긴햇살이 좋았다. 그리고 여행의 비수기인 봄이라선지 여행객이 거의 없다는것이 더 장점이었다. 아무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조용함.. 머리가 멍해졌다. 
작은 언덕을 넘자마자 아주 조그마한 해변이 보였고 그옆으로 작은 마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조그마한 해변은 폭이 100m를 조금 넘는 크기였고 부두 건너편의 어부들 말고는 아무도 사람들이 없었다. 
해변을 따라 조금 걷다가 문뜩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서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궜다. 파도에 따라 모래가 간지럽게 발가락 사이를 지나갔다. 
수면을 바라다 보니 갑자기 수진이가 생각 났다. 수진이는 내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은걸까? 수진이는 내가 그냥 편한 사람인걸까? 날 사랑해서 나에게 다가온게 아니었을까? 멀리까지 와서 이런 고민해봐야 답도 나오지 않고 여행온게 아깝게 느껴졌다. 
돌계단을 지나 올라오니 들을 가득 매우고 있는 유채꽃 밭이 보였다. 그래 이게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었다. 유채꽃의 노란색의 빛들 사이로 돌담이 쌓아져 있었고 그사이에 길이나 있었다. 길을 따라 하얀색의 예쁜집이 있는 곳을 향해서 걸었다. 집은 햐얀 바탕에 초록색 문 긜고 지붕과 창은 노란색이었다. 마치 동화에나 나오는 그런 집같았다. 계속 머리속에 여행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이와의 일들도 모두 잊고 다시 웃으면서 그애를 만날수도 있을것만 같았다. 
햐안 집에 거의 도착했을때 쯤 누군가 유채꽃밭의 돌담에 걸터 앉아 있었다. 조그마한 옆으로 매는 가방, 햐얀색 원피스 베이지색 가디건에 양갈래 머리를 하고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뒷모습 만으로는 나와 같은 여행객.. 일행이 없으면 같이 구경다녀도 괜찮을거 같이 느껴졌다. 한걸음 앞으로 걸어 인사를 하려고 다가섰다. 그쪽에서 먼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안녕. 여기 너무 좋다. 그지?"
내 눈을 믿을수가 없었다. 수진이다. 
"너.. 여기 어떻게 온거야.?"
"여행 왔지요. " 라고 하며 어제와 다르게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여기 오는거 알고 있었어? 나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했는데..? 어떻게 된거야? "
"그냥 우연이야. 우연." 라면서 능청스럽게 이야기 하고는 돌담에서 휘 내려왔다. 
"아직 나 구경 하나도 못했는데~ 얼른 가자~" 라는 수진이의 말에 떠밀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가 방금 돌아온 해변으로 왔다.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왔다갔다 하는 수진이.. 
찬찬히 해변을 이야기 하면서 걷다가 살며시 수진이의 손을 잡았다. 
"오빠. 내가 있잖아. 내가 오빠 처음봤을때,, 그때 기억나?" 조금은 상기된 표정의 수진이가 말했다.
"응. 기억나지."
"실은 그때 오빠가 내가 아는 누구랑 너무 닮아서 정말 너무 닮아서 오빠한테 관심이 있었던거야. 나한테 너무 소중한 사람이거든.. " 
수진이의 말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자꾸 오빠의 모습을 그 사람의 모습에 맞춰봤었어. 마치 내가 알던 그 사람일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봐. "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수진이의 모습에 가슴이 쓰려왔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던게 아니라 다른사람을 생각하면서 나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 많이 해봤어. 오빠랑 같이 있던 기억들도 떠올렸구.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 그리고 확신을 했어. 오빠는 그 사람이 아니란걸. 지금의 오빠를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도 고민 많이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랑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그때서야 겨우 자연스럽게 오빠가 받아들여졌었어. 미안해.. 이제 내가 더 잘할게.." 
"아니야. 넌 지금까지 나한테 잘해 왔었어. 그래도 참 궁금하다. 너가 생각했던.. 그사람.."
"그거 알아? 오빠는 처음에는 모르다가 시간이 갈수록 알면 알수록 재밋는 사람이라거.. 그리고 좋은 사람이라는거.. 참 자상하다는거.. " 
수진이의 말을 따라 도로를 걷다가 문득 태양을 바라 보았다. 수진이가 처음에 있었던 곳으로 가서 그 예쁜 하얀집에 숙소를 잡았다. 배는 이미 수진이를 처음 만났을쯤 끊겨 있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짐을 다 풀고 씻은 후 편한 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조금은 쌀쌀한 해변에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조금씩 더 우리들의 오해들이 풀려가는것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직도 난 그녀에 대해 모르는게 많다. 의문점들도 풀리지 않는다. 계속 비밀을 품고 있는 아이.. 그래도 괜찮았다.  전과는 많이 다르게 편안함을 주고 있으니까.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양치를 하고 가져왔던 짐을 정리했다.  양치하는 수진이에게 수건을 가져다 주었다. 
"오빠는 다 씻었어? "
"으.. 응.. 여기 수건."
"어. 고마워.."
조금은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성큼 다가가 입을 맞추고 허리쯤을 끌어 안고 들어 올렸다. 내 발등쯤에 그녀의 발이 닿았고 성큼 성큼 침대로 걸어갔다. 그녀와 함께 침대에 살포시 넘어지고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쌓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샴푸냄새가 느껴졌다. 천천히 그녀의 옷의 단추를 조금 풀고 허리쯤의 피부에 손을 올릴때쯤, 화들짝 놀라는걸 느꼈다. 그리고 너무 떨고 있는 수진이.. 무릅위쪽으로 손을대자 순식간에 한뻠뒤로 물러선다. 
"저.. 저기.. 자.. 잠깐만요. "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너무 겁먹었네. 무섭구나. " 
"그런거 아니에요~"
"에이 뭐 맞구만. 나 그냥 옆방에서 잘게. 내일 보자."
멍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수진이에게 이불을 덥어주고는 옆방으로 갔다. 볼수록 귀여운 구석이 있다. 
다음날 수진이와 섬에서 나와서 이곳저곳을 좀더 여행하고는 그날 더 늦지않게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하는동안 수진이와 나는 예전 같은 사이로 돌아올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마음의 이면에는 너무 모든게 잘 풀리고 있는것만 갇아서인지 마음한쪽에 알수없는 불안감과 언제까지 이런 행복이 계속 지속될지에 대한 막연함이 가라 앉아 있었다. 




작가의 말 

이번화는 다른화와는 달리 유난히 길게 쓰게 되었네요. 이제 약 3편정도만 더 쓰면 이 소설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이 소설이 소소한 일상의 흐름같은 느낌이 든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늘 그런거 아니구요. 이제 다음화부터 좀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수진이란 인물의 컨셉은. 어떤 사람이라고 딱히 이야기 해주긴 어렵지만 이번화의 이미지는 딱 저런 이미지라고 생각하시면 될거 같네요. 



이 사람은 미야자키 아오이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거라고 생각해요. 사진이 느낌이 정말 괜찮네요. 

 
이번 화의 실제 배경은 청산도가 아니고 보길도 입니다. 제가 보길도는 여행은 해봤거든요. 청산도는 그냥 간단하게 사진정도만 보고 상상 해봤습니다. 청산도에서의 수진이의 모습도 친구랑 보길도 여행에서 만나서 이야기 했던 여자분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저는 막 전역했었고 친구는 아직 군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유쾌한 여행이었던거 같습니다.


실제 배경으로 생각한 하얀 집의 이미지입니다. 드라마 봄의 왈츠에 나왔던 집인데 이런 느낌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회되면 꼭 청산도로 한번 여행가보고 싶네요.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1. 26. 22:10

11. 비관성 좌표계
눈을 뜨자마자 어제 끓여 두었던 국에 불을키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낸다. 내 파란색 고양이 키키는 아침부터 밥부터 달라고 보챈다. 텅빈집의 거실에서 티비를 키고 커피를 만든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매우고 커피를 마시면서 티비를 본다. 조용한 집에 티비가 쾌쾌한 침묵을 없애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식탁에 앉아서 씩씩하게 밥을 먹는다. 샤워를 하고 드라이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옷장을 열어 고른다. 새로산 향수를 뿌리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 현관에 있는 가족사진을 본다. 엄마.. 아빠.. 언니.. 너무 보고싶다.. 
보드라운 햇살, 약간 가벼운 걸음, 온화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조금은 차가운 아침.. 내이름은 신수진. 벌써 회화과에서 3학년이 된 스물셋의 대학생이고 꿈도 많고 생각도 많은 아이이다. 벌써 이곳에 온지도 스무살때부터니까 사년이 되간다. 처음 몇년동안은 정말 재밋고 신나고 내 맘대로 살았던거 같다. 엄마가 요리도 잘 알려줬어서 이제 음식도 잘한다. 참 내가 봐도 대견하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 괜시리 혼자 웃어 본다. 
미대 건물쯤 왔을때쯤 연준오빠가 서있다. 연준 오빠를 처음 본건 작년 가을쯤이었다. 처음봤을때는 너무 반가워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었다. 물런 좀더 일찍 만나고 싶긴 했지만 그땐 때가 아니었으니까.. 우선 뭐라고 대충 둘러대고 노트를 들고 나가 버렸던걸로 기억한다. 참 그런 당당함은 어디서 나온건지.. 처음엔 오빠의 반응들이 너무 재밋고 신기해서 한참동안이나 재밋어 했다. 그리고 내가 알던 김연준이란 사람하고 너무 다르다는것에 처음엔 많이 놀랐었다. 한없이 밝고 행복한 미소를 가진 다정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는데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너무 어둡고 차가우면서 씨니컬한 사람이었다.
"밥 먹었어? 너 어제 도서관에서 울때 너무 많이 걱정됬었어.."
지금 내앞에 있는 사람은 내가아는 김연준이 맞다. 기분이 좋아졌다. 
"네 괜찮아졌어요. 뭐 이런일두 저런일도 있구 그런걸요 뭐."
"다행이다. 기분 많이 좋은거 같아서.. 수업 언제 끝나? 있다가 점심이나 같이 먹자. "
"12시에 끝나니까 그때 연락할게요."
오전부터 조금 지루한 역사와 이론수업을 들어갔다. 강의실 안에는 친한 동기인 선정이가 자리를 잡고 있다.
"수진아~ 언제 왔어? "
"방금 왔어. "
"너 선배랑 헤어졌다면서? " 갑자기 목소리를 죽이는 선정이.. 참 귀엽다.
"응. 그렇게 하기로 했어." 
"왜? 잘 만나는거 아니었어? "
"그냥 좀 그렇더라구. 고민해보니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거 같았어."
"그 연준인가 하는 사람? 왜? 솔직히 너랑 안어울려~ 너가 훨신 아깝지~"
"말만이라도 고맙다." 
가볍게 짓는 미소에 선정이는
"아무튼 너가 좋다니깐. 내가 많이 응원해줄게~ 아. 수업 시작한다."
바로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조금 지루한 수업이 시작됬다. 학기 초의 설레임과 시끌벅적함이 조금은 들뜨게 만든다.
가까운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약간은 쌀쌀한 캠퍼스를 걷기 시작했다. 금방 학교에서 나와서 학교주변의 시가지로 나왔다. 
"나 궁금한데.. 넌 어떤사람이야?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다. "
"흠..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몰래 머리속에서 이야기를 잘랐다 붙였다 해본다.
"제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땐, 지금 처럼 아웃사이더도 아니었구. 학과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재밋었어요. 2학년땐 휴학하고 일도 햇었는데 일할때는 회사사람들 하고도 재밋게 지내선지 정말 즐겁게 지냈었어요. 무슨 무역회사 였었는데.. 정말 즐겁게 일했어서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남고 아직도 회사사람들하고 연락도 하고 그래요. 맞다!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회사 동료였는데 회사에서 서로 같이 많이 혼나고 일도 같이 해서 정이 많이 들었었죠. "
"요즘도 많이 생각나?"
"에이~ 그럴리가요. 벌써 한 2년 전인데요 뭐.."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확 불어온다. 순간 눈을 찔끔 감는데 바람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오빠가 바람을 가리고 있었다. 바람이 잦아들고 그는 머플러를 벗어서 내 목에 둘러주면서.
"나 너한테 할말있어."
그말하려나 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역시 이렇게 되니 너무 떨리기 시작했다.
"나랑 사귀자."
"고마워요. 참 오래걸렸네요."
라고 하고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 졌다. 

다음날 수업을 듣고 그를 만나러 자연과학부 건물에 왔는데 그가 학과 후배들을 만나고 있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슬쩍 그의 등을 확 끌어 안으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했다. 그의 얼굴 표정이 기대된다.  
"어? 수진아 안녕~" 
수영 언니의 목소리.
"어? 뭐야~"
"저 오빠랑 사귀기로 했어요."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1. 14. 21:49

10. Ising model
"너.. 그 사람이랑 만난다면서?"
"네.. 그러기로 했어요."
"결국 그러기로 한거구나.. "
선배라는 사람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졌다. 
"너 이러는거 진심 아니지? 사실은 나 좋아하는거잖아. 왜 스스로 속이려고 하는거야?"
"저 그런거 아니에요. 저 이 사람 정말 좋아해요. 진심이에요. 선배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에요."
"너 거짓말 하면 자꾸 땅만 보는거 알아?  지금 하는 말들.. 진심이 아니잖아. "
"아니요. 진심이에요. 진심이어야 하기도 하구요. 이러지 마세요. 이럴수록 선배만 힘들어요. "
"거짓말 하지마.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내가 더 잘할게.."
"이런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
"그렇다고 하기엔 너 너무 빨리 바뀐거 알아? 잘 만나다가 갑자기 이별 통보를 하고.. 정말 이유라도 알자."
"미안해요.. "
잠시동안 그들은 침묵하다가 수진이는 서둘러 발걸음을 옴겨 버렸다. 스스로 머리속이 너무 복잡했지만 우선 우체국부터 다녀와야 했다. 우편물을 보낸후에 바로 수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B동 연못앞이요. "
"응 나 거기로 갈게"
학교안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평소에는 좀 외진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잘 왔다갔다 하지 않는 곳으로 연꽃이 많이 펴서 아는 사람들만 가끔씩 들르는 곳이었다. 조금 바쁜 걸음으로 연못으로 가고 있는데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그런 단호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그사람을 확 밀어내 버린 그 아이거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B동에 도착했을때 연못앞 밴치에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 앞에 조심스럽게 다가가면서 활짝 웃는 얼굴을 준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너무 어두웠다. 잔뜩 찌푸린 미간은 너무 복잡한 마음이 보였고 붉게 충혈된 눈은 겨우겨우 눈물을 참아 내고 있었다. 나에게 미소지어 줄거라고 생각했었던 나는 순간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웃는 얼굴을 더 밝게 만들어 내며 웃고 있었다. 
"우리 애기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장난스럽게 이야기 한 말에 그녀는 낮고 차가운 말투로
"그러지 마요."
붉어진 눈의 출렁거리는 물결에서 눈물이 도르륵 얼굴아래로 떨어졌다. 순간 나도 당황해서 표정이 심각해 질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보고 있었죠?"
당황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응.. 알고 있었어? 엿들을려고 그런건 아니었어.. 그냥 그 순간에 내가 나서기도 애매할거 같아서.."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나에게 와락 안겼다. 그리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녀도 나도 서로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던 뭐가 슬프던 일단은 그녀가 조금 잠잠 해질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왜 우는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아까 그녀는 그 선배를 확실히 밀어 냈는데.. 아직 미련이 많이 남은걸까? 그래 그사람이 나보다 좀 많이 잘생기기도 했고 키도 크고, 재밋는 사람이란건 그간 첩보활동으로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한데.. 정말 그사람에게 미련이 남아서 이렇게 슬프게 우는걸까? 그녀가 잠잠해지자 나와 그녀와의 관계가 조금은 확실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왜 이렇게 슬프게 우는거니? "
"......."
말이 없다. 또.. 땅만 보고 있다.
"너무 복잡하면 말하지마.. "
"아니에요. 그냥 조금 혼란스러워서 그래요."
"뭐가 혼란스러운데? 너랑 나랑 이렇게 잘 행복하게 만나는거 아니었어? 아직 그 사람한테 미련이 남은거야?"
"그 사람한테 미련이 남은건 아니에요. 그냥 오빠랑 제가 혼란스러워서 그랬어요."
"너 나 사랑하니?"
그녀가 순간 나의 시선을 피해버린다. 익숙했던 슬픈 감정들이 다시 찻아온다. 올것이 왔구나. 다음순간 나의 감정도 얼굴 표정에서 숨길수가 없게 된다. 
"그럼 왜 날 만나니.. 내가 그냥 편해보여서 그래서 만나는거야?"
"그런게 아니에요. 오해 하지 마세요."
오해? 오해... 이 상황에서 정말 내가 오해를 안해야 하는걸까?
"오빠.. 랑 있으면.. 좋아요. 편하고. 따뜻하고 행복하고 친근하고 나의 모든걸 다 받아줄거 같아요. 그래요. 그게 아닌거 알아요. 차차 알아가야 하는것도 알구. 아직 제가 오빠에게 조금은 낯선 사람인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 오빠를 설레는 연인으로 저의 남자친구로 받아들일 확실한 준비가 안되있는거 같아요. "
열심히 들었지만.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도 알아 듣기도 힘들었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지면서 그동안 나를 향해 보여줬던 모습들이 하나 둘 스쳐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다정하고 재밋으면서 나도 모르는 나의 작은 버릇이나 습관들도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내가 커피를 마실때 만델링을 마시는지 과테말라를 마시는지도 알고 있었고, 내가 어떤 그림을 좋아 하고 어떤음악을 좋아하는지도 알고, 그것을 함께했던 사람인데, 정말 이 사람이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그 끝이란게 보이는걸까?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오해 하고 있었나보다."
순간 뒤를 돌아서서 묵묵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번이라도 돌아 봐서 뒤를 돌아 보고 싶었지만 그럼 내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들켜버릴거 같았다. 이렇게 쉽다. 가까워지는것 보다 멀어지는것이. 어렵게 시작해서 이렇게 쉽게 끝나버리는것이..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1. 10. 00:13

9. saddle point
날씨가 많이 온화해져서 목련도 올라오고 해도 조금더 길어졌다. 간단한 공연을 보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홍대거리에서 조금의 낮선 감정들을 느끼곤 했다. 예전엔 다른사람과 함께 걷던 거리를 이번엔 또 완전히 다른 사람과 걷고 있다. 웃고 있는 많은 커플들 거리에서 노래하는 거리의 젊은이들 사이로 따스한 햇살을 맞으면서 약간 앞서가는 그녀의 뒤를 걸으면서도 알수없는 텁텁한 맛이 입안을 맴도는 이유는 뭘까.. 언제나 보는 전형적인 행복한 상황에서 조금 나는 머뭇거림을 느끼고 있다. 앞서가는 수진이가 뒤를 바라볼때.. 이 아이의 미소 마저 잃을까 생각들을 주머니속에 구겨 넣고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수진이도 따라 웃는다. 심장이 상큼하게 움직이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래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고 따스하고 밝으니까..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내가 자주가던 카페로 데리고 왔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커피를 주문하고 수진이도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 카페에 와서 처음으로 와플과 아이스크림도 주문해 봤다. 커피를 내오시는 분이 신기한듯 나를 처다보았다. 수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 이야기, 요즘 사는 이야기, 앞으로 진로이야기나.. 뭐.. 그런것들.. 이상하게 지난번 일때문인지 좀더 개인적인 부분들은 물어볼수가 없었다. 집안 이라던지 형제라던지 그런것들.. 조금 용기를 내서.
"혹시 형제있어? 뭐.. 언니나 남동생 같은거 말이야. "
"아니 없어.. 나 귀한집 외동딸이야. 잘 모시고 살아야돼."
그녀의 웃음에 나도 웃게 된다. 외동딸이라니. 역시 좀 유복하게 자랐나 보다. 정말 귀하게 모셔야겠는데.. 
"난 여동생 하나 있어. 내일에 뭐그리 관심이 많은지. 맨날 구박하고 그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쉽게 말이 끊어지는.. 어색한 공기가 잠깐씩 흐른다. 이 간극.. 난 이 간극이 싫다. 너와 나사이를 어색하게 만드는 간극.. 
"커피 어때? 원래 커피는 좀 식어야 맛있어. 너무 뜨거우면 본래의 맛이 안난다고 하더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미소를 짓는다. 조금 지나 천천히 우리는 우리가 사는 학교 주변으로 돌아 왔다. 오늘은 그녀의 집에 초대 되어서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학교 외곽의 집으로 갔다. 미리 준비해놓은 듯한 재료들로 음식을 하고 나도 옆에서 돕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금방 멋진 한상이 차려 졌고 천천히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누가 그랬던가.. 앞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 있으면 '이사람은 왜이렇게 재미없는거야?' 라고 생각하다가도 앞에 있는 사람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루한 사람은 내가 되버린다고.. 이럴때마다 말을 잘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 보이고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진다. 가끔은 그녀가 톡톡 튀는 말들로 나를 이끌어 주지만 역시나 여전히 나는 말 재주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투박한 나의 가방에서 작은 선물을 하나 꺼내었다. 그것은 전부터 조금 준비한것으로 그녀의 집이 횡한걸 느껴서 산 토끼 캐릭터가 들어간 예쁜 머그컵이었다. 
"언제 이런거 준비했어?"
"그냥.. 전에 여기 왔었을때 좀 횡해 보이더라구.."
기쁘게 받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현관 앞에서서 신발을 신는데 그녀가 말했다. 
"연준오빠.. "
"응?"
"너무 무리하지마."
"뭐가?"
"내가 부담스러워 하는건 아닌데.. 선물같은거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됬고.. 내 앞에 있을때 재밋는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해주려고 많이 노력하는거 잘 아는데.. 그러지마.. 오빠가 아무말 하지 않아도 나 충분히 오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거 같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되고 무리하지 마라구.. 나 어디 안가 지금 오빠 눈앞에 있잖아. "
내 마음을 독심술을 하는걸까..? 순간 난 멍하니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내 모습들이 그렇게 티가 났나.. 라고 생각할때쯤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가볍고 짧은 키스를 해주었다. 순간 모든 시간이 얼어 붙은것처럼 느껴졌다.
"잘 들어가 내일 또 보자." 
그녀의 그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을때... 오랜시간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다음날은 무슨일인지 아침 일찍일어나 밥을 해먹고 금방 학교에 나왔었다.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밀린일들을 서둘러 확인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책상도 정리 했다. 교수님께 간단한 부탁을 받아 작은 우편물을 대전으로 부치게 되어서 물건을 들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아침공기는 조금 차가웠고, 해는 많이 떠서 따스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빠르게 움직였고 미대 건물을 지나 우체국 근처로 다가 갔을때쯤, 수진이와 만나던 같은과 선배와 수진이가 같이 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밝은 표정들은 아닌거 같았지만, 알수없는 짜증과 통증이 뼈속부터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벽뒤에 기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1. 6. 21:04

8. rigid body
날씨가 조금 풀려 산뜻한 아침에 등교길은 언제나 익숙한 발걸음을 만든다. 늘 지나는 거리지만 이런 날은 괜히 모든것들이 예쁘게만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등교길에 자주가는 커피 집에 들렸다. 언제나 계신 그분이 앉아 있다.  항상 매일 아침 이 시간쯤에 이곳을 찻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게 신기 했다. 언제나 그날 가장 괜찮은 커피를 주문 했고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벼운 아침을 먹었기에 부드러운 녀석이 좋았고, 눈웃음이 예쁜 차분한 바리스타님은 에스프레소가 아닌 핸드드립으로 만든 카페라떼라는 특이한 메뉴를 추천해 주면서, 
"연준씨 요즘 좋은 일 있나봐요? " 라고 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별일은 아니구요. 요즘 일상이 조금 바뀌게 됬는데 작은 변화로 생기는 작은 미소라고 해두죠." 
내가 듣기에도 내 목소리엔 웃음 기가 가득했다. 커피를 들고 조금씩 마시면서 학교로 향했다. 날이 풀려서인지 조금 많은 사람들이 캠퍼스를 왔다갔다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연대 건물을 지나 미대 건물로 갔다. 2층에는 수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 마신 커피를 버리고 수진이의 캔버스를 아래층으로 옴겨주는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겉은 이래 보여도 튼튼한 남자라는걸 증명이라도 해보고 싶을 정도로.. 조금 있다가 보자고 하고 연구실로 돌아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손도 더 가벼워지고 하는일에 집중도 잘됬다. 작은 변화라는 것이 내 모든 생활을 좌지 우지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동안이나 집중해서 일을 하다가 보니 머리가 조금 아파서 복도를 조금 걷기 시작했다.  창문 아래로 짧은 햇살이 들어왔고 김이 나는 라디에이터 위로 한줌 정도의 칼날 같은 찬바람이 들어왔다. 날카로움보다 시원함을 느끼면서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
승현이다. 옆에 수영이도 있었다. 
"오빠 요즘 얼굴보기 힘들어요. 요즘 무슨 좋은일 있어요?"
수영이가 환희 웃으면서 의심 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좋은일은 딱히 없지만, 뭐라 할말이 없었다.
"별일은 없어. 그냥 찬공기가 상큼하네. "
"시험도 얼마 안남았는데 과제들은 잘 하고 있는거야?" 승현이의 질문에..
"어제 집중해서 다 끝냈어."
원래 나는 그런걸 좀 몰아쳐서 하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승현이는 나의 말에 조금 의아해 하였다. 그래 몇일전에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하기도 머슥하기도 했고, 늘 보던 수진이라 그런지 이야기 해주면 다들 어색해 할것만 같아 티를 내지 못했다.  
"혹시 수진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거야?" 
"아니 아무일도 없었어."
"요즘 둘이 잘 지내는거 보면 신기해.."
그도 그럴것이 뜬금없이 내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갑자기 다른사람을 만나더니 다시 돌아와 나와 함께 있는 그녀의 모습을 나 역시도 또 많은 다른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미 어떻게 보면 이상하면서 틀어져 버린 관계인데도 나는 이상하게 그녀를 보면 측은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일순간 등뒤에서 따뜻한 느낌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 수진이의 목소리.
"어? 수진아 안녕~" 수영이가 빠르게 대답했다.
내몸에 가려지긴 했지만 분명히 수진이가 내 등뒤에서 나를 안고 있었다.
"어? 뭐야~~ "
눈앞의 두사람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을때 수진이가 먼저 귀엽게 내 어깨쪽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이야기 했다. 
"저 오빠랑 사귀기로 했어요."
아. 이제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겠구나. 란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그것이 기분이 좋았다. 
"와~ 축하해요~ " 수영이의 말이 반가웠다. 
승현이는 그저 가벼운 미소로 웃고만 있었다. 
조용히 차분히 수진이의 손을 잡고 점심을 먹으러 걸었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지만 혼자가기엔 혹은 남자들끼리 가기엔 좀 멋적은 곳으로 갔다. 조용하고 편한한 느낌의 실내에서 천천히 음식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처음 만났을때 기억나?  너가 내 수업에 들어 왔었잖아. 그거 우리과 전공 수업인데 왜 들은거였어?"
"그냥 제목이 특이하길래 이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해서 들어 봤어요. " 
"내 이름은? " 
"노트에 써있었잖아요. "
"그래 노트는 왜 빌려간거야? 재미로 들어온 수업이라면서.."
"에.. 이런 질문은 그만 물어보세요. 부끄럽게.."
얼굴이 전혀 붉어 지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더 물으면 안됄거 같이 바뀌었다. 마음속으론 뭔가 논리적으로 너무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사람 인연이란게 이래서 신기한건가란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그리구 어떻게 내가 가는곳마다 있었어?? 따라 다니는줄 알았어~"
"그냥 우연이었어요. 어떻게 알고 일일히 쫒아 다녀요."
한결더 새침한 얼굴의 표정이 되면서 조금만더 몰아 붙였다가는 화내고 나갈 분위기다. 
"아니야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 뿐이야." 엷은 미소로 이야기 하자. 이내 그녀의 표정이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각자의 수업을 들으로 헤어지고, 걸어가면서도 이 아이와 어떤곳으로 데이트 갈지 상상하고 있는 내 모습에 너무 놀랐다. 평소에 내가 알던 내가 아닌거 같아서.... 
Posted by blindfish
소설/틈2011. 1. 3. 22:15

7. 대칭성의 붕괴
학교근처의 조그마한 밥집. 간단한 나물류의 반찬들이 나오고 속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음식이 나오자 밥을 떠서 조그마한 입으로 한술한술 먹기 시작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저 별로 화려하지 않은 음식들을 조용조용 가만히 먹고 있었다. 거의다 먹고 나올때쯤 그애가 입을 열었다.
"역시 밥먹으니까 기분이 더 나아지네요."
그애의 말에 긍정하면서도 참 사람이란 묘한 구석이 있다는걸 느끼게 되었다. 추운 학교 외각 길을 같이 걷다 눈을 떠보니 낮선 작은 주택앞에 있었다. 
"제가 사는 집이에요. 와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지금 이 상황이 조금 위험한 상황이란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제안을 쉽게 거절할수가 없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고 조금더 걸어들어가니 현관이 나왔다. 요즘같은 시절에 이런 집에서 사는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붉은 색 지붕위에 다락이 있는 예쁜 집이었다. 
"부모님 안계셔? 이렇게 불쑥 들어가도 되는거야?"
"네. 여기 저 혼자 살아요. "
이거 정말 좀 위험한 상황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그마한 원룸에 혼자사는 나로서는 이런 제법 큰집에 이 아이 혼자산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현관 안으로 들어가자 조그마한 거실이 있었고 들어 오는 우리를 시큰둥하게 쳐다보는 햐얀색의 고양이가 있었다. 외투를 벗고 그녀는 능숙하게 커피를 꺼내서 핸드밀에 넣어서 커피를 갈아 내기 시작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고소한 향이 마음에 들었다. 저런걸 가지고 사는 사람도 흔치 않을텐데.. 그녀는 드리퍼에 필터를 끼우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은 순식간에 끓었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자. 고소한 향은 집안에 그윽하게 퍼졌다. 아주 심플한 디자인의 식탁에 앉아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는 쓰지 않으면서도 커피의 감칠맛과 적절한 신맛을 가지고 있었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님을 느꼈다. 
"부모님은 어디서 사셔? "
"오빠.. 저 실은. 부모님 안계세요."
순간 내 표정은 조금 곤욕스럽게 바뀌었고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무슨말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그녀가 먼저 입을 뗏다.
"부모님이 안계신건 아니데.. 제가 성인이 되면서 부터 헤어지게 됬어요. 이제는 보고싶어도 다시는 볼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항상 저를 지겨보고 있고 제가 무얼하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고 계실테니까요.. 분명히 저를 응원해주고 있고 그만큼 제 고민에 잠도 못자고 있으실거니까요.."
그녀의 말에 무슨말인지 도무지 나는 알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에 그녀가 너무 가여워졌다. 난 시종일관 미소로 화답하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어둡지많은 않았고, 난 그녀의 말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어렵긴 했지만..  그녀와 커피를 마시고 거실 쇼파에 편히 앉아서 티비를 보았다.  별 시덥지 않은 티비 프로를 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웃고 있었고 편한한 느낌을 받으면서 말하지 않았지만 따스함을 느꼈다. 햐얀색 고양이는 자꾸 나를 귀찮게 괴롭혔지만 말이다.
그렇게 계속 티비를 보다가 그녀를 보니 쇼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녀를 안고 침실에 옮기는동안 그녀가 그렇게 가볍다는 사실에 더 놀랄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침대에 뉘의고 한참동안이나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들어 있는 그녀는 어딘가 외로워 보였다. 매일매일 텅빈 집에 들어왔을 그녀를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이 커다란 집에 혼자 잠들었을것을 생각해보니 더 그러한것 같아 보였다. 뒤돌아 나오다가 그녀의 다른 방을 보았다. 그녀의 작업실 같아 보이는 곳이 보였다. 커다란 캔버스와 바닥에 깔린 비닐이 그녀의 화실이라는 확신을 들게 하였다. 작업실은 커다란 발코니에 햇빛이 들고 있었고 약간 독특한 물감 냄새가 안을 덥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을 보았다. 긴 햇살 아래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 걷고 있는 거리를 그린 그림이 보였다. 
그녀의 집을 나와 집이 잠긴것을 몇번이나 확인하고 어두운 길을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아직 내가 수진이라는 아이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떤 사람을 만나봤고 어떤 사랑을 했던걸까.. 내가 아는 수진이란 아이의 모습은 보이는게 전부가 아닐것이고 내가 격어보지 못한 일들을 격어 보았을 것이고, 내가 해보지 못하는 경험을 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더.. 이해해야만 한다.. 
Posted by blind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