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틈2011. 1. 6. 21:04

8. rigid body
날씨가 조금 풀려 산뜻한 아침에 등교길은 언제나 익숙한 발걸음을 만든다. 늘 지나는 거리지만 이런 날은 괜히 모든것들이 예쁘게만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등교길에 자주가는 커피 집에 들렸다. 언제나 계신 그분이 앉아 있다.  항상 매일 아침 이 시간쯤에 이곳을 찻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게 신기 했다. 언제나 그날 가장 괜찮은 커피를 주문 했고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벼운 아침을 먹었기에 부드러운 녀석이 좋았고, 눈웃음이 예쁜 차분한 바리스타님은 에스프레소가 아닌 핸드드립으로 만든 카페라떼라는 특이한 메뉴를 추천해 주면서, 
"연준씨 요즘 좋은 일 있나봐요? " 라고 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별일은 아니구요. 요즘 일상이 조금 바뀌게 됬는데 작은 변화로 생기는 작은 미소라고 해두죠." 
내가 듣기에도 내 목소리엔 웃음 기가 가득했다. 커피를 들고 조금씩 마시면서 학교로 향했다. 날이 풀려서인지 조금 많은 사람들이 캠퍼스를 왔다갔다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연대 건물을 지나 미대 건물로 갔다. 2층에는 수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 마신 커피를 버리고 수진이의 캔버스를 아래층으로 옴겨주는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겉은 이래 보여도 튼튼한 남자라는걸 증명이라도 해보고 싶을 정도로.. 조금 있다가 보자고 하고 연구실로 돌아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손도 더 가벼워지고 하는일에 집중도 잘됬다. 작은 변화라는 것이 내 모든 생활을 좌지 우지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동안이나 집중해서 일을 하다가 보니 머리가 조금 아파서 복도를 조금 걷기 시작했다.  창문 아래로 짧은 햇살이 들어왔고 김이 나는 라디에이터 위로 한줌 정도의 칼날 같은 찬바람이 들어왔다. 날카로움보다 시원함을 느끼면서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
승현이다. 옆에 수영이도 있었다. 
"오빠 요즘 얼굴보기 힘들어요. 요즘 무슨 좋은일 있어요?"
수영이가 환희 웃으면서 의심 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좋은일은 딱히 없지만, 뭐라 할말이 없었다.
"별일은 없어. 그냥 찬공기가 상큼하네. "
"시험도 얼마 안남았는데 과제들은 잘 하고 있는거야?" 승현이의 질문에..
"어제 집중해서 다 끝냈어."
원래 나는 그런걸 좀 몰아쳐서 하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승현이는 나의 말에 조금 의아해 하였다. 그래 몇일전에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하기도 머슥하기도 했고, 늘 보던 수진이라 그런지 이야기 해주면 다들 어색해 할것만 같아 티를 내지 못했다.  
"혹시 수진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거야?" 
"아니 아무일도 없었어."
"요즘 둘이 잘 지내는거 보면 신기해.."
그도 그럴것이 뜬금없이 내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갑자기 다른사람을 만나더니 다시 돌아와 나와 함께 있는 그녀의 모습을 나 역시도 또 많은 다른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미 어떻게 보면 이상하면서 틀어져 버린 관계인데도 나는 이상하게 그녀를 보면 측은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일순간 등뒤에서 따뜻한 느낌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 수진이의 목소리.
"어? 수진아 안녕~" 수영이가 빠르게 대답했다.
내몸에 가려지긴 했지만 분명히 수진이가 내 등뒤에서 나를 안고 있었다.
"어? 뭐야~~ "
눈앞의 두사람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을때 수진이가 먼저 귀엽게 내 어깨쪽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이야기 했다. 
"저 오빠랑 사귀기로 했어요."
아. 이제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겠구나. 란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그것이 기분이 좋았다. 
"와~ 축하해요~ " 수영이의 말이 반가웠다. 
승현이는 그저 가벼운 미소로 웃고만 있었다. 
조용히 차분히 수진이의 손을 잡고 점심을 먹으러 걸었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지만 혼자가기엔 혹은 남자들끼리 가기엔 좀 멋적은 곳으로 갔다. 조용하고 편한한 느낌의 실내에서 천천히 음식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처음 만났을때 기억나?  너가 내 수업에 들어 왔었잖아. 그거 우리과 전공 수업인데 왜 들은거였어?"
"그냥 제목이 특이하길래 이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해서 들어 봤어요. " 
"내 이름은? " 
"노트에 써있었잖아요. "
"그래 노트는 왜 빌려간거야? 재미로 들어온 수업이라면서.."
"에.. 이런 질문은 그만 물어보세요. 부끄럽게.."
얼굴이 전혀 붉어 지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더 물으면 안됄거 같이 바뀌었다. 마음속으론 뭔가 논리적으로 너무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사람 인연이란게 이래서 신기한건가란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그리구 어떻게 내가 가는곳마다 있었어?? 따라 다니는줄 알았어~"
"그냥 우연이었어요. 어떻게 알고 일일히 쫒아 다녀요."
한결더 새침한 얼굴의 표정이 되면서 조금만더 몰아 붙였다가는 화내고 나갈 분위기다. 
"아니야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 뿐이야." 엷은 미소로 이야기 하자. 이내 그녀의 표정이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각자의 수업을 들으로 헤어지고, 걸어가면서도 이 아이와 어떤곳으로 데이트 갈지 상상하고 있는 내 모습에 너무 놀랐다. 평소에 내가 알던 내가 아닌거 같아서.... 
Posted by blind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