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틈2011. 1. 14. 21:49

10. Ising model
"너.. 그 사람이랑 만난다면서?"
"네.. 그러기로 했어요."
"결국 그러기로 한거구나.. "
선배라는 사람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졌다. 
"너 이러는거 진심 아니지? 사실은 나 좋아하는거잖아. 왜 스스로 속이려고 하는거야?"
"저 그런거 아니에요. 저 이 사람 정말 좋아해요. 진심이에요. 선배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에요."
"너 거짓말 하면 자꾸 땅만 보는거 알아?  지금 하는 말들.. 진심이 아니잖아. "
"아니요. 진심이에요. 진심이어야 하기도 하구요. 이러지 마세요. 이럴수록 선배만 힘들어요. "
"거짓말 하지마.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내가 더 잘할게.."
"이런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
"그렇다고 하기엔 너 너무 빨리 바뀐거 알아? 잘 만나다가 갑자기 이별 통보를 하고.. 정말 이유라도 알자."
"미안해요.. "
잠시동안 그들은 침묵하다가 수진이는 서둘러 발걸음을 옴겨 버렸다. 스스로 머리속이 너무 복잡했지만 우선 우체국부터 다녀와야 했다. 우편물을 보낸후에 바로 수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B동 연못앞이요. "
"응 나 거기로 갈게"
학교안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평소에는 좀 외진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잘 왔다갔다 하지 않는 곳으로 연꽃이 많이 펴서 아는 사람들만 가끔씩 들르는 곳이었다. 조금 바쁜 걸음으로 연못으로 가고 있는데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그런 단호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그사람을 확 밀어내 버린 그 아이거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B동에 도착했을때 연못앞 밴치에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 앞에 조심스럽게 다가가면서 활짝 웃는 얼굴을 준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너무 어두웠다. 잔뜩 찌푸린 미간은 너무 복잡한 마음이 보였고 붉게 충혈된 눈은 겨우겨우 눈물을 참아 내고 있었다. 나에게 미소지어 줄거라고 생각했었던 나는 순간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웃는 얼굴을 더 밝게 만들어 내며 웃고 있었다. 
"우리 애기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장난스럽게 이야기 한 말에 그녀는 낮고 차가운 말투로
"그러지 마요."
붉어진 눈의 출렁거리는 물결에서 눈물이 도르륵 얼굴아래로 떨어졌다. 순간 나도 당황해서 표정이 심각해 질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보고 있었죠?"
당황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응.. 알고 있었어? 엿들을려고 그런건 아니었어.. 그냥 그 순간에 내가 나서기도 애매할거 같아서.."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나에게 와락 안겼다. 그리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녀도 나도 서로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던 뭐가 슬프던 일단은 그녀가 조금 잠잠 해질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왜 우는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아까 그녀는 그 선배를 확실히 밀어 냈는데.. 아직 미련이 많이 남은걸까? 그래 그사람이 나보다 좀 많이 잘생기기도 했고 키도 크고, 재밋는 사람이란건 그간 첩보활동으로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한데.. 정말 그사람에게 미련이 남아서 이렇게 슬프게 우는걸까? 그녀가 잠잠해지자 나와 그녀와의 관계가 조금은 확실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왜 이렇게 슬프게 우는거니? "
"......."
말이 없다. 또.. 땅만 보고 있다.
"너무 복잡하면 말하지마.. "
"아니에요. 그냥 조금 혼란스러워서 그래요."
"뭐가 혼란스러운데? 너랑 나랑 이렇게 잘 행복하게 만나는거 아니었어? 아직 그 사람한테 미련이 남은거야?"
"그 사람한테 미련이 남은건 아니에요. 그냥 오빠랑 제가 혼란스러워서 그랬어요."
"너 나 사랑하니?"
그녀가 순간 나의 시선을 피해버린다. 익숙했던 슬픈 감정들이 다시 찻아온다. 올것이 왔구나. 다음순간 나의 감정도 얼굴 표정에서 숨길수가 없게 된다. 
"그럼 왜 날 만나니.. 내가 그냥 편해보여서 그래서 만나는거야?"
"그런게 아니에요. 오해 하지 마세요."
오해? 오해... 이 상황에서 정말 내가 오해를 안해야 하는걸까?
"오빠.. 랑 있으면.. 좋아요. 편하고. 따뜻하고 행복하고 친근하고 나의 모든걸 다 받아줄거 같아요. 그래요. 그게 아닌거 알아요. 차차 알아가야 하는것도 알구. 아직 제가 오빠에게 조금은 낯선 사람인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 오빠를 설레는 연인으로 저의 남자친구로 받아들일 확실한 준비가 안되있는거 같아요. "
열심히 들었지만.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도 알아 듣기도 힘들었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지면서 그동안 나를 향해 보여줬던 모습들이 하나 둘 스쳐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다정하고 재밋으면서 나도 모르는 나의 작은 버릇이나 습관들도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내가 커피를 마실때 만델링을 마시는지 과테말라를 마시는지도 알고 있었고, 내가 어떤 그림을 좋아 하고 어떤음악을 좋아하는지도 알고, 그것을 함께했던 사람인데, 정말 이 사람이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그 끝이란게 보이는걸까?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오해 하고 있었나보다."
순간 뒤를 돌아서서 묵묵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번이라도 돌아 봐서 뒤를 돌아 보고 싶었지만 그럼 내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들켜버릴거 같았다. 이렇게 쉽다. 가까워지는것 보다 멀어지는것이. 어렵게 시작해서 이렇게 쉽게 끝나버리는것이.. 

Posted by blind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