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틈2009. 11. 7. 22:34

5. 최소경로
수진이랑 그 선배다. 그런사이었나.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지고 속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변한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차가운 밤바람이 자동차의 매연을 머그믄 채로 얼굴을 스쳐간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마치 내가 나자신을 비웃는거 같은.. 
커다란 레고모양의 기숙사에 도착하자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매점으로 내려가 컴라면을 사고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한다. 핸드폰의 시간은 9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과 짭짤한 국물. 잠깐 이었지만 뭔가 캄캄한 어둠이 온몸을 덥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키고 이것저것 웹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기한이 남은 숙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얇은 옷을 입고 문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승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어디야?"
"나 잠깐 기숙사 있다가 나왔어. 커피나 한찬 하자구"
"그르까? 과로 오면 연락해"
갑자기 이슬비가 조금식 뿌리기 시작한다. 차분이 걷다가 학과 사람들을 만나서 가볍게 인사를 한다. 다들 이렇게 서로들 인사를 하지만 이중에서 정말 친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어떻게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70년대를 연상 시키는 학과 건물에 왔다. 언제나 어둑한 분위기에 나트륨등이 안개에 비쳐 커다란 나무들과 함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솔직히 술한잔 하고 싶긴 했었어."
"그럴거 같더라"
이 녀석은 역시 내 속을 훤히 보고 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나에 대해서 잘안다. 늘 가던 그 술집이다. 우리의 통화에는 언제나 장소나 시간같은건 결정되어 있지 않다. 선약이란 개념도 없다. 그저 만나고싶을때 만나고 습관적으로 발길 닿는데로 걸어갈뿐이다. 
오늘따라 더 술이 달짝찌근한거 같다. 이런날이 있나보다. 
아무리 시간이 가도 어둠이 나를 잠식해온다. 이게 아니란것도 잘 알지만.. 어쩔수 없는 끝없는 우울과 고통들의 움직임들에게서 벗어날수가 없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시간들.. 
지금 내 앞엔 승현이가 앉아 있지만 언젠가 부터인지. 그 누구에게도 '진짜'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됬다. 승현이에게 마저도 난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그것도 어쩔수 없는 상투적인 대화들에 머무른다. 아무리 고민해도 시간은 가고 아무리 피해가려 해도 그런 때와 사건들은 나를 찻아 온다. 시작하지도 않고 실패를 걱정하고 시작하고도 마음속이 닫혀있다.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더욱더 누군가에게 아무 이야기도 해줄수 없고 그걸 한탄하는 내 자신도 누군가를 받아줄수가 없게 된다. 수진이가 보고싶다. 지금 하고 있는일도 잘하고 싶다. 끊임없이 나를 옭아 매는 시간과 무게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잘하고 싶다.. 두렵다.. 사람이 두렵다.. 20대가 주는 무한한 자유의 사막에.. 끝없는 지평선 끝을 바라볼때마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질식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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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프고.. 목이 마르다.. 언제나 같은 내방.. 몇년째 혼자쓰는 이방에 어제의 기억은 지워진채로 눈을 떳다. 어제의 알콜 섭취를 후회하는 마음과.. 현실의 벽을 인지한다... 그래.. 다시 움직여야할 시간이다.
물 한목음을 마시자 다시 정신이 또렸해진다. 우리는 이런 매일매일의 반복안에 살아가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강인한건가 보다..
내일은 어떨까.. 모레는 어떨까.. 앞으로는 이런것들의 반복일까.. 아니면 여유로운 순항일까.? 나는 분명히 후자는 아니라는걸 안다. 늘 드라마처럼 인생은 버라이어티 하지 않고 드라마틱 하지도 않을거다. 그냥.. 불가능한 끝도 없는 믿음에 나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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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움직이자..
Posted by blind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