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틈2009. 7. 21. 20:59

4. 빛의 이중성
수진이 선배라던 시람이 뜬금 없이 이야기를 하자는게 이상하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어 도서관 6층의 커피전문점으로 갔다. 전면유리사이로 햇살이 비춘다. 학생들은 모여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전형적으로 스터디를 하는 학생들을 위해 배려된 공간이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학도 내가 다니던 때와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걸 알수 있었다. 첫 느낌부터 그가 공격적이란걸 알수 있었다. 딱 봐도 나한테 불만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으니까. 산뜻한 붉은 색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대리석으로 된 테이블위로 커피를 올려놓는다. 
"당신은 왜 수진이를 밀어 내는건가요?"
역시 예상대로 서론 없이 본론이다.
"수진이가 저한테 뭐가 되는것도 아니고 무슨말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저 수진이한테 관심있어요. 수진이는 당신밖에 모르는거같던데.. 오래전부터 봐왔습니다."
약간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애랑 얼굴안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말이에요? 딱 까놓고 이야기해서 당신이라면 모를까 나는 누군가 뒤에서 좋아할 비주얼도 아니란거 알잖아요? 그렇다면 분명 뭔가 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는거 아닙니까?"
나의 말에 그의 얼굴이 약간 허탈하게 바뀌었다.
"도데체 어디부터가 삐뚤어져 있는겁니까.. 뭐가 문제인거죠?"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이만 갈게요."
"저도 더이상 그애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을겁니다."
듣는둥 마는둥 자리에서 일어나서 일층으로 내려갔다. 그애는 확실이 예쁘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논리성이 맞지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우연이나 기연은 일어나지 않는게 현실적이지 않은가.. 
나이가 먹어서인지.. 과거의 연애에 대한 편력들이 나를 괴롭히는건지 알수 없었지만. 자꾸만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다. 다 쓰잘떼기 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걸 생각하는 것보다는 지금 내 앞가림이나 잘하는게 더 중요하다. 내가 있어야 사랑하는 사람이란것도 있는거니까. 
승현이와 아까부터 문제를 풀고 있다. 생각보다 잘 안풀리긴 하지만 한푼제 정복해갈때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오는 날의 습기는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든다. 얼마후에 수진이가 수업이 끝나고 우리가 공부하는 곳으로 왔다. 어느날 부터인가 같이 다니고 있다. 서로 완전히 다른책을 보고 있긴 하다만. 분위기가 약간 달라진건 이제 더이상 나도 수진이가 가까이 있는거 신경안쓰고 그애도 더이상 심각하게 따라다니진 않는다. 그 선배가 뭐라고 했나 보다. 
"수진아 근데 너 집은 어디야?"
"아.. 그냥 이 근처에서 자취해요."
"아니 내말은 그게 아니라 원래 집 말이야"
"원래 집은... 지금 사는데가 원래 집이에요"
하며 가볍게 웃어 넘긴다. 아무래도 더이상 물으면 안될거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몇가지를 더 물어 봤다.
"밥은 해먹어?"
"그럼요~ 제가 얼마나 음식을 잘하는데요."
"뭐 잘하는데?"
"국같은거 잘해요~ 언제 한번 우리집에 와요. 실력을 보여줄테니까."
별로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지만 나중을 한번 기약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공부를 꾸준히 한날은 기분이 좋다. 해야할일을 충실히 했기때문일까.
술이 한잔 땡겼지만 요즘 건강에 이상이 와서인지 언제 까지나 이런식으로 술을 마시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이가 핸드폰을 보더니 약속있다고 먼저 자리를 떳다. 승현이는 뭔가 쓸쓸해졌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매일 우리들끼리만 있다가 수진이가 끼니까 분위기가 좋아진긴 했었다. 앞머리를 한쪽으로 넘겨서 예쁜 핀으로 고정하고 시원한 파란색 치마에 하얀 티를 입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예뻐 보인다. 정말 어떻게 보면 수진이는 내 이상형이긴 했지만. 솔직히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아서 경계하고 있다. 꼭 이런 상황에서는 이상한 목적이 많다. 시간이 더 지나고 진심을 확인할때까진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때도 여자로 보일지는 의문이지만.. 그때가 되면 그냥 귀여운 동생으로 보이겠지..
저녁을 먹고 공대의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팀프로젝트 모임에 참석해서 그동안 삽질의 결과물들을 이야기 하고 서로의 프로그램에 변수들을 조정했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본업으로 삼지 않은건 참 다행인거 같다. 너무 3D고 힘들다. 물런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것도 아니고..
시간에 늦지 않게 서점에 들러서 독일의 한 단편소설을 샀다. 도서관에서 빌리면 되지만 종종 소장하고 싶은것도 있으니까. 책을 한권사고 조금씩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 대학가를 지나서 인파를 뚤고 기숙사로 가고 있었다. 앞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수진이다. 근데 나랑은 상관 없지만, 손잡고 가는 저 사람은 누구지? 

Posted by blind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