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틈2009. 6. 7. 04:58

3. 시간의 연속성
학생식당. 어색한 4인의 식사가 시작됬다. 친한후배 전일이가 먼저 어색한 공기를 깨려고 한다. 
"형 요즘 하는건 잘되세요?"
"늘 소강 상태지.."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답변한다. 요즘들어 늘 심기도 복잡하고 어느날부터 차가운 인간이 되가는거 같다. 머쓱해서 말을 더이었다.
"에러는 잡혔는데 뭔가 계속 돌아가. 아무래도 무한루프라도 있는거 같아."
"헐.."
"그게 아니면 계산량이 엄청 많은거 같은데. 테스트 코드 넣어보면서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 머. "
솔직히 잘될지도 모르는 애매한 계산을 돌리고 있는것도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그건머 원래 이 바닥이 그런거니까.. 이런 어색한 분위기에도 수진과 승현이는 밥을 묵묵히 먹는다. 잠깐 밥을 먹으면서 오늘과 내일 할일들의 리스트를 뽑아보고 있었다.
"연준 오빠 아까. 정체가 뭐냐는 좀 심했었어요. "
"그래. 알아. 외계인도 아니고.."
"사람이 왜그렇게 방어적이에요? 누가 잡아 먹어요?"
"아니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해요. 그냥 우연히 만나서 밥도 먹을수 있는거지."
틀린말은 아니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하지말자. 약간 작은 키에 아담한 스타일.. 뭔가 청순한 얼굴에 내 주변들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수진이.. 지금은 뭔가 지쳐있는 표정이다. 생기 발랄한 방금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표정. 말이 없다. 승현이와 하는 간단한 일상적인 대화들.
"연준아 너 이제 공부는 머할 계획이냐. "
"물런 실험쪽 할생각인데 여유되면 입자이론쪽도 해보고 싶어. 특히 시공간쪽에 관심이 좀있어서. 너가 들을땐 거의 소설에 가까운 느낌이겠지만 머 공간이동이라던가.. 그런것들 말이야. 나도 소설이라곤 생각하는데 불가능하다고 해서 상상도 못하는건 아니니까.."
수진이는 관심없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내가 언제 부터 이름만 부르게 됬지? 
"저 수업있어서 먼저 일어날게요."
하면서 수진이가 먼저 일어 났다. 뭔가 표정이 안좋아 보였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관계도 아니라는 생각에 ....
나도 일어나서 수업에 갔다가 자성체 연구실 옆쪽 칠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누굴 가르칠 실력은 안되지만 그래도 같이 물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거 자체가 즐겁다. 고등학교 때는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많이 외로웠었다. 지금 커서 생각해보니까 이런것을 같이 들어줄만한 사람자체도 있다는게 그 시절엔 말이 안됬었다. 5월의 햇살과 후배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오늘 따라 피로도 심하고 들어가서 자야겠다. 기숙사로 들어가는길.. 약대 뒤에 수진이가 앉아 있다. 뭔가를 받아 쓰고 있는 모습.. 여러가지 색깔의 펜들과 조그마한 스티커, 그리고 몇개의 사진들을 붙이면서 정성스럽게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조금 다가가서 더 자세히 보려는데.
"왔어요? 이거 일기장인데 더 이상 가까이 오면 안되요."
"어? 아.. 미안.."
책을 황급히 덥었는데 두권의 일기장을 들고 있었다. 하나는 매우 낡았었는데 일기를 아주 어릴때 부터 썼나 보다. 
"우연히 자주 보네요. 어디 가요?"
"자러 기숙사에 가.. 저기 아까는 기분이 안좋아 보이던데.."
"할려던 일이 있었는데 마음 먹은것만큼 잘 안되더라구요.. 이제 괜찮아요. 고민하지 않기로 했어요. 잘안되면 살짝 내려 놓고 잊는게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 래.... 난 이만 갈게."
"네 다음에 봐요."

언제나 찻아오는 아침이 무겁다. 뭔가 특별한 일도 없는데 말이다. 어느날엔 언제나 나에게 바라는 기대가 커선지 알차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늘 쉬운것만은 아닌거 같았다. 그런 실망들이 쌓이면 의외로 아침에 눈뜨기가 힘들다. 그래도 이렇게 아침 수업이라도 있는 날에는 기분이 좋긴하다. 수업들을땐 집중력이 좋아야한다. 한순간 방심하면 수업을 따라갈수가 없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정말 어김없이 잠이 온다. 그리고 정신차려 보면 교수님이 문밖으로 나가고 있다. 다행이 버티긴 했지만. 커피 한잔 마셔야겠다.
"어?"
아.. 불편한 얼굴을 마주했다. 이래서 CC는 좋은게 아니라고 몇번이나 다짐했었지만. 머 늘 일이 마음 먹은데로 되나. 젠장..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갔다. 사랑이란게 원라 처음은 예뻐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 끝은 이런식으로 공허할때가 많다. 역시 다시 보니 또 마음이 흔들린다. 아.. 짜증나.. 
"어? 오빠 수업끝났어요? "
익숙한 목소리의 수진이. 얼마나 자주 마주치는지. 그런데 팔에 이 따뜻한 느낌은 머지.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팔에 팔짱을 꼈다. 컥. 안돼. 왜하필 지금이냐고. 충격이 커서 순간적으로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듯.. 그 불편한 얼굴이 표정마져 더 어두워지면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너 방금 뭐하는 짓이야?"
"화내지 마요. 속으론 그래주길 바라지 않았나요?"
그러긴 했지만 화가 치미는 건 어쩔수 없었다. 
"아니야!"
"옛 여자친구인데 뭐 어때요? 이게 더 도움되는거 아닌가?"
"잠깐.. 그건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승현 오빠가 알려주던데 조심하라고."
이자식.. 뇌 깊숙한 곳부터 통증이 몰려오는걸 느꼈다. 아.. 될대로 되라.
"아무튼 우연히도 자주 만나네요? "
"넌 내가 있는데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거냐."
"그냥 우연히 가는데 마다 있는거 뿐이에요."
"아.. 그래 아랐다."
더 물어보는게 소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실 웃는게 약간 얄밉긴했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도 있다. 연구실로 직행해서 어지럽게 놓은 책상에 종이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논문은 논문대로 책은 책대로 그리고 컴퓨터를 켰다. ubuntu가 뜨고. 메신저에 승현이가 있길래 잽싸게 
'야 너 쓸데없이 왜 그런말을 한거야~!'
'어? 머?'
'나 전에 만나던 애 있잖아. 왜 수진이한테 이야기 한거야?'
'이야기 한적 없는데 뜬금없이 왜그래?'
'어라. 그래? 어.. 알았어. 아무것도 아니야.'
머지..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 승현이가 이런거에 거짓말할 녀석도 아닌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다시 터미널을 켰다. 검은화면에 하얀 프롬프트. 

연구실일로 컴퓨터와 실험장비들을 옴기계됬다. 승현이는 과에서 하는일이니 불만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전일이는 약간 투덜 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수학과에서 하면 될일인데 우리가 하는게 이상하긴 하다. 한참 옴기는데 건너편에 잔디밭위로 사람들이 보인다. 회화과 사람들인데 끝 주변쯤에 수진이도 있었다. 사람들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캔버스를 두고 검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나름 어울리다는 생각에 속으로 웃었다. 같은과 선배인 남자가 와서 말을 거는거 같아 보였다. 흠..  180이 조금 넘는 키에 고딕양식이란 말이 떠오르게 하는 얼굴.. 참 시원스럽게 생겼다. 표정이 밝아 보인다 선남 선녀란건 저런거 보고 하는 말인가. 표현이 좀 웃기네.
"야.. 뭐보냐~ 아? 질투하는구나."
"저 녀석이랑 나랑 무슨 관계인데 질투냐. 얼른 옴기자."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투덜거렸다. 대충 옴기고 인스톨까지 완료.. 음료수 한캔 땡기면서 승현이랑 계단에 걸터 앉았다. 예비군 이후로 이렇게 땀흘려본적이 없었다. 승현이는 약간의 곱슬머리에 잘생긴 얼굴이지만 말주변이 없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나에겐 그냥 편한 녀석이라는 점이 참 좋았다. 은은한 은목서의 향기가 날아왔다. 요즘은 이 인생에 만족하고 살아간다. 더 복잡해지지도 더 어려워지지도 않는 이 상황들..
한참 웃고 떠드는데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니. 검은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있다.. 아까 멀리서본 수진이의 선배. 
"저기 이야기좀 하고 싶은데요?"
난 별로 할말 없을거 같은데..
Posted by blind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