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틈2011. 2. 22. 01:15
15. 돌아오지 않는 숲
조금씩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림을 들어올려서 벽에서 내리자 벽뒤에 작은 서랍장이 하나 있었다. 그 서랍장을 열어보니 100년은 되어 보이는 쾌쾌한 책이 한권 있었다. 한눈에 나는 그것이 아내의 일기장임을 알아 챘다. 우선은 문하생들의 눈을 피해 일기장을 가방안에 넣었고 문하생들이게 짦은 인사를 하고 나서 작업실 앞에 작은 호수로 향했다. 전에 아내를 위해 만들어둔 작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서는 일기장의 앞부분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일기장의 내용들은 너무나 나에게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연진이가 대학시절에 내가 만난 수진이라니.. 이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걸까. 서늘한 바람이 불어 왔고 긴 햇살이 온화하게 내리쬐고 있는 조용하고 잔잔한 호수앞에 앉아 있었지만 여기에 있는 내 시간은 뭔가 멈춰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아내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이자 내가 애지중지 키웠던 딸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나의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었다. 차근차근 마음을 다잡으며 일기장을 보았다. 일기는 우리가 만나고 수진이가 살았던 모든 일상들이 빽옥하고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분량도 너무 많아서 한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울 정도 였다. 해질녁까지 차분하게 일기를 읽었다. 건너뛸부분은 건너뛰고 보면서 어느세 마지막 부분까지 이르렀다. 일기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어제 쓴 일기였다. 
.
.
오늘 연진이에게 모든것을 이야기 했다. 연진이는 많이 힘들어 했고 나도 그것을 격어 봐서인지 연진이가 많이 안쓰러웠다. 이제부터 수진이로 살아야 하는 내딸 연진이.. 내가 처음 엄마에게 그말을 듣고 나서 밤세도록 고민했을때 들었던 생각은 내가 과거로 가지 않는 다면 어떻게 될까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아빠는 엄마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겠지.. 그리고 언니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거고 나는 이렇게 따스하고 좋은 부모님과 살수도 없었겠지. 너무 소중한 언니와 이렇게 행복한 자매로 살아 볼수도 없었겠지. 그런생각들이 들면서 이제는 부모님도 언니도 다시는 볼수 없게 되겠지만 그 누구도 죽은것도 아니고 영영 못만나는것도 아니고 분명히 언젠간 다시 만날수 있는 사이란걸 마음 한켠으로 계속 기대해 볼수 있지 않을까. 어린 나는 그런 생각들에 꽉 차있었고 어느정도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자신감에 차있었던거 같았다. 실제로 그후에 그런 자신감을 유지해 나가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연진이에게 이야기 할수만은 없었다. 
과거로 돌아갔을때는 엄마가 작업을 했던 작업실 앞 호수 근처였다. 실험 장비를 세팅해 두었던 그대로 연구소에서 약 2키로 정도 떨어진 작업실.. 그때는 작업실도 없었고 그냥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때부터 어린 나는 모든걸 스스로 해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고 외롭고 쓸쓸한 시간들을 지나 대학에 오고 사람들을 만나고 중간에 회사도 다니면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일년이 지나고 삼년이 지나고 점점 그곳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차차 잊어갔던거 같았다. 남자친구도 사귀고 친구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명절이나 휴일에는 많이 외로웠지만 그것도 조금은 견딜만 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에 처음으로 아빠를 만났다. 연준.. 그는 역시나 생각대로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한눈에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던 아빠란걸 알았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서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랑 친해질까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엄마가 준 일기장을 열어보면서 나는 미래에 일어날 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물런 모든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지만 내가 특별히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흘러 갔다. 처음엔 연준이란 사람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연준이란 사람은 내가 알던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란걸 알게 되었다. 어딘가 날카로웠고 어딘가 삐딱했다. 그로인해 나도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마음도 많이 아팠다. 그는 너무 어둡고 차가웠다. 몇일씩이나 힘들어했었다. 그를 만나러 과거로 왔는데 그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가 아마 가장 힘들었던때가 아니었을까... 그때 가장 서러웠던거 같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너무 보고싶었다. 그 모든것들을 포기하고 저 사람을 위해 여기 까지 왔었는데.. 너무 억울하고 아팠다. 결국 그를 포기하고 잘 살아보기 위해 노력했다. 오래 전부터 나를 좋아해주던 사람도 있었고 주변사람들도 너무 좋았다. 뭐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선배를 만나면서도 마음 한컨이 많이 공허 했다. 선배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선배를 만나면서 한순간도 내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것은 연준이라는 사람때문이 아니라 그 인기도 많고 항산 학과에서 여자들에게 분란을 만들었던 선배 스스로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재밋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끔씩은 그의 달콤한 말들도 진심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을때쯤.. 선배와 헤어지게 되었다. 다시 만난 연준이라는 사람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를 만나지 못했던 시간동안 그 안에서 뭔가 심경의 변화들이 있었나 보다. 그랬다. 그제서야 내가 알던 연준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연준오빠의 서툰 행동들, 표현들을 보면서 이 사람에게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를 만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이었고 나 또한 그런 한결같음을 가지고 그를 대해 갈수록 그는 나에게 좀더 마음을 열어 갔다. 중간중간에도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엄마가 왜 아빠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모든게 행복하게만 따사롭게만 지나게 될줄 알았던 나의 마음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던건 내딸 연진이가 사춘기를 지날 무렵부터 였다. 연진이가 조금씩 모든 기억과 완성된 인격을 만들어 갈수록 나 스스로가 연진이에게 자꾸 겹쳐 보이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남편은 자꾸 아버지의 모습에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몇십년간이나 잊어버리고 지내던 혼란들이 다시금 나를 찻아왔다. 더욱이 주현이를 볼때마다 더 혼란이 커져만 갔다. 내가 낳은 사랑스런 딸이지만 주현이가 커갈수록 자꾸 어린나를 손잡고 데리고 다니던 언니가 생각났다.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시아버지나 시어머니 같은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고 시누이 같은 동생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연진이가 오늘 나에게 엄마는 행복했었냐고 말했을때 자신있게 말했지만 조금은 주저할수 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도 이미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은 이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동안 남편에게 티내지도 이야기 하지도 못했지만 스스로 너무 힘들었다고 좀 도와달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수가 없다. 주현이한테도 미안하고 남편에게도 미안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난 분명히 견디지 못할것이다. 힘들다... 너무 힘들다.. 
.
.
.
이렇게 일기는 끝이나 있었다. 난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체로 그녀의 사랑을 한없이 받기만 했었다. 그녀는 이 모든일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크게 힘든 내색 한번 안하고 잘 살아 왔던거였다. 내가 너무 나약했고 내가 너무 그녀를 몰랐다. 일기장을 덥고 주변에 낙엽과 나무를 모아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곤 미련없이 일기장을 불속에 던져 넣었다. 이것을 혹시라도 어떻게든 주현이가 보게 된다면 아마 연진이보다 나보다 아내보다 주현이가 너무 힘들어질거란 생각이 들어서 일것이다. 그리고 우선 주현이 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 어디에요? "
"아빠 잠깐 엄마 작업실에 왔었어.."
"엄마는 찻았어요? 연진이는요?"
"주현아 조금만 더 기다려 아빠가 꼭 엄마 찻아가지고 올게.. 엄마 어디있는지 아빠가 알거 같아."
"정말요? 아빠만 믿을게요. "
그후로 조금더 주현이를 달래고 차에 올라 탔다. 아내가 갈곳은 아마 한곳밖에 없었을거다. 아마 우리와 나이가 비슷할거라고 생각되는 그녀의 친부모일것이다. 내가 그녀라면 분명히 그곳을 먼저 갔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아내에게 연진이의 친부모에 대해서 들어 본것은 많지 않지만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사는지는 다행이 내가 따로 알아본바가 있었다. 우선 무조건 남쪽으로 속도를 냈다. 아내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무엇이 되었던간에 아무일 없었던거처럼 미소지으면서 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 힘들어하라고.. 힘들면 같이 힘들어 하자고, 그렇게 이야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것에 차갑고 날카롭게 삐딱하던 내 모습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끝, 


Posted by blind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