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틈2011. 2. 17. 23:07

13. crack
매일매일 맞이 하는 아침이지만 어떤 아침은 여느때와 다른 느낌을 줄때가 있다. 오늘 샤워하고 나와서 거울앞에서 섰을때가 그런때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새 머리에 흰머리가 많이 늘었고 이마와 눈가에도 주름이 많이 늘었다. 나이가 쉰이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늙어간다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런것들일것이다. 식탁으로 가서 어제 끓여놓았던 찌개를 끓이고 어제 만들어 놓았던 갈치 조림도 데운다. 반찬도 내고 밥도 뜨고 밥먹을 준비가 다 될때쯤 큰딸 주현이의 방에 갔다. 아직도 푹 자고 있다. 어제 기억에 오늘은 오전 수업이 없다고 했던게 기억 나지만 그래도 아침은 먹이는게 좋을거 같아 조금씩 흔들어 깨웠다.
"주현아 일어나서 아침먹어."
"아빠. 오늘은 아침 안먹을래요."
어제 좀 늦게 자는거 같더니만 레포트쓴다고 바빳나보다. 모르는게 있으면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했지만 무슨 고집인지 잘 물어 보지 않는다. 큰딸 깨우는건 포기 했고 고등학생인 둘째딸 연진이를 깨우러 연진이 방에 갔다. 
"연진아 학교 가야지 얼른 일어나."
"아. 벌써.. 일곱시에요? 네.."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아직 잠이 많을 나이의 연진이. 곧 연진이와 같이 식탁에 앉는다. 애교있는 주현이와 달리 조금은 무뚝뚝한 연진이는 아빠인 나보다 집사람이랑 더 가깝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내딸. 갈치에 가시를 발라서 딸 밥에 올려준다. 
"어머니는 어디 갔어요?"
"엄마는 전시회 준비한다고 어제 작업실에서 안 돌아왔어. "
꼬박꼬박 아침도 잘 먹고가는 연진이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래도 연진이가 다행인건 학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곧잘 나에게 이야기 해준다는 것이다. 먹은것들을 치우고 주현이가 일어나서 먹을 음식들을 조금 내놓는동안 연진이는 학교갈 준비를 마쳤고 나도 옷을 금방 갈아 입었다. 
오랜만에 차를 타고 연진이를 학교 앞까지 태워주고 난 연진이에게 용돈을 조금 주었다. 살짝 웃으면서 날 꼭 안아주는 연진이, 말수가 많진 않지만 확실히 귀여운 면이 있다. 주현이는 내가 막 직장을 가지게 되었을때쯤 수진이와 결혼하고 얼마 안되서 낳은 큰딸이다. 처음 주현이를 낳고 아이를 더 가질 계획을 생각했지만 아내가 꼭 둘째애는 입양하자고 해서 좀 오래 고민해보고 수진이가 아는 지인을 통해서 입양을 하고 연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주현이가 동생 연진이를 안고 웃던 모습은 아직도 너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늘상 그렇듯 아이들 키우고 내일 하면서 살다 보니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감을 통감한다. 어리던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큰애를 보면 딸 잘 키운게 뿌듯하다. 연진이는 여전히 자신이 우리의 친딸인걸로 알고 있고 그게 더 좋을거 같아서 아내와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행이 같이 살면 닮는다고 했나 크면 클수록 아내와 많이 닮은 모습의 연진이를 보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에 왔다. 요즘 하는 일은 국가 연구소에서 조금 독특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뭐 대단한것은 아니고 될듯 안될듯 한 부분이라 펀드를 지원해 주는 쪽도 그렇게까지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거 같았다. 아직 이론적으로 완전히 증명된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실험적으로 이루어 져서 어느정도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아직은 실험적으로만 완성된 부분이라선지 컨트롤이 어렵고 조금 불안정하다. 일단은 장비세팅은 대충 끝났고 몇번도 실험해보고나서 발표할예정이다. 이 장비는 어떤 사물을 일정거리정도 공간을 이동 시키는 장비로써 아직 단점은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고 정확히 타겟이 어디로 이동할지에 대한 불확정성이 좀 있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적인 효과를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아직은 무리가 많다. 
하루 종일 내일 실험 세팅들을 하고 차를 타고 수진의 작업실에 갔다. 수진의 작업실은 집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산속에 내가 편백나무를 심어 놓았던걸 잘라서 만든 오두막 같은 곳이다. 언제나 그집에 들어가면 향기로운 나무향기가 났다. 조그마한 벽난로가 있고 마당엔 개도 한마리 키웠다. 늘.. 생각 했던것이 나중에 딸들 시집가고 퇴직하게 되면 집을 좀더 증축해서 아내와 조용히 살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높은 천장의 방에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수진을 보았다. 아내는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그리던 작품을 거의 완성한것 처럼 보였다. 같이 집에 들어가서 내가 미리 장본 재료들로 수진이가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현주에게 전화해서 오늘 저녁먹으러 꼭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이야기 했다. 연진이는 학교가 끝나고 이미 집에 일직 들어와 있었다. 그래도 고등학생이라고 자기딴엔 다 컷다고 생각했는지 엄마랑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있는걸 보면 참 예쁜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주현이가 왔고 그래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같이 저녁을 먹었으면 했어서 내가 이야기 한것이다. 주현이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했고 조심스레 남자친구가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저. 남자친구 있어요. 이제 막 복학한 동기 남자애인데.. 예전엔 몰랐는데 많이 어른스럽더라구요.  만난지는 석달쯤 됬어요." 
주현이는 조금 부끄러운듯 이야기를 했다.
"우리딸 능력있네. 같은 과야? 아빠랑 엄마랑도 그렇게 만나서 결혼두 하고 그랬잖아."
아내가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난번에 집앞에서 보던 친구가 그 남자친구인 거야?" 
의도한건 아니지만 조금 퉁명스럽게 내가 이야기 했다. 
잘 키운딸이 남자친구가 있다는게 조금은 질투가 났지만 그래도 석달이나 사귀었는데 집까지 데려다 주는거 보니 잘해주는거 같아서 안심하긴 했다. 
오늘은 아닌거 같지만 요즘 부쩍들어 아내가 얼굴이 많이 어두워졌다. 아마 연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였던거 같은데 무슨일이 있는건지 무슨 고민이 있는 건지 삼십년을 가깝게 만나고 있는 나로서도 아직은 모르겠는 부분들이 많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흔들림도 없고 밝았던 사람이 이러는걸 보니 처음엔 갱년기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이럴수록 내가 더 노력 해야겠지만, 어찌됬던 오늘의 아내는 다른때 보나 많이 밝았고 잘 웃었고 참 행복했다. 식사하고 과일도 먹다가 갑자기 연구실에 두고온 물건이 생각 났다. 잠깐 나간다고 하고 연구실에 돌아왔다. 연구실 몇몇 대학원생들은 여전히 열심히 실험 중이다. 한 학생이 장비 설정 프로그램을 설정하는데 애를 먹고 있길래 조금 도와주었다.  웬만하면 이런 테크닉한 부분들은 스스로 해결하게 하려고 하지만 몇일째 집에도 안 들어가는 몇몇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금방 들어간다는것이 어느세 한시를 넘어 버렸다.  학생들에게 내일은 건물 전체가 정전이니 쉬라고 이야기를 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역시나 집에 들어오니 이미 아내도 딸들도 모두 잠들어 있었다. 
다음날 점심쯤이 되어서야 나는 조금 늦게 일어 났다. 휴일이라 연진이도 학교를 가지 않고 있었고 아내가 점심을 하고 있었다. 주현이는 약속이 있다고 오전에 집을 나간듯 해 보였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를 내려서 아내와 마셨다. 연진이가 컵을 내오다가 컵을 깨뜨렸다. 너무 깜짝 놀라서 서둘러 유리조각들을 내가 치웠다. 
"연진아 왜그래? 어디 안다쳤어? "
"네.. 안다쳤어요..."
라고 이야기 하고 했지만 웬일인지 연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우리 딸 왜그래? 무슨일 있었어? "
라는 내말에 연진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했지만 바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구만. 왜그래 우리딸.."
바로 옆에 아내가 서있었다. 무슨일인지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던 슬픈 눈으로.. 
"여보 내가 좀 연진이랑 이야기 하고 있을게. "
때 마침 전화벨이 울리고 연구실 동료로부터 상의 할게 있으니 잠깐 만나자고 했다. 갑자기 연진이가 그러니까 마음이 많이 불안햇지만 아내가 잘 이야기 해줄거라고 믿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동료가 나와있었다. 
"무슨일인데?"
"아니 다른게 아니라 지난번에 실험치 계산 했던 사람한테 메일이 왔는데 중간에 틀린부분이 있더라고.."
"응? 정말?"
"아마 지금 세팅대로 실험하면 space distotion 이 심해서 에너지가 세서 폭팔할지도 모르겠더라구. "
"그럼 질량에 비해 세팅이 강하게 되있는거네? "
"아무튼 급한일 인거 같아서 형 불러서 다시 계산해볼라고 그랬지. "
"아무튼 다행이다. "
혹시 모르니 어서 연구실에가서 세팅을 낮추어 놔야겠고 생각을 했다. 정전이긴해도 누군가가 와서 혹시라도 장비를 가동시키기라도 했다가는 큰 폭팔로 이어질게 뻔했기 때문이다.  계산을 마치고 서둘러 차를 운전해서 실험실로 향했다. 창문을 열고 주말 오후의 따뜻한 공기를 맞으며 조금은 여유롭게 달렸다. 설비 점검차 건물 정전이었던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집에 두고온 연진이가 걱정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수진이는 현명한 여자니까 딸을 잘 달래고 우는 이유가 뭔지 잘 알아내서 잘 다독였으리라 믿었다. 분명 남자인 나는 모르는 여자들만의 어떤 고민일수도 있는 거니까. 
연구실에 다 다다랐을때 주차장에 낮익은 차한대가 보였다. 아내의 차.. 어떻게 된거지? 내가 나가서 찻으러 왔나? 그렇다면 분명히 나한테 연락을 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웬지 모를 불길한 마음에 서둘러 차를 대고 차문을 여는순간..
꽝! 하는 폭음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고 건물의 유리창들이 깨지면서 창틀이 통체로 뜯겨져 내렸고 연구동은 순간 화염에 휩쌓였다. 뜨거운 공기와 충격파가 나를 휩쓸었고 순간 몸이 날아 올라 주차장 뒤에 가로수에 부딧쳤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온몸이 타는듯이 쑤셔왔다. 머리를 부딧쳤는지 조금씩 의식이 희미해졌고 폭팔이 일어난 건물쪽에서 차분하게 아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난.. 곧.. 의식을 잃었다... 


Posted by blind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