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틈2011. 1. 10. 00:13

9. saddle point
날씨가 많이 온화해져서 목련도 올라오고 해도 조금더 길어졌다. 간단한 공연을 보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홍대거리에서 조금의 낮선 감정들을 느끼곤 했다. 예전엔 다른사람과 함께 걷던 거리를 이번엔 또 완전히 다른 사람과 걷고 있다. 웃고 있는 많은 커플들 거리에서 노래하는 거리의 젊은이들 사이로 따스한 햇살을 맞으면서 약간 앞서가는 그녀의 뒤를 걸으면서도 알수없는 텁텁한 맛이 입안을 맴도는 이유는 뭘까.. 언제나 보는 전형적인 행복한 상황에서 조금 나는 머뭇거림을 느끼고 있다. 앞서가는 수진이가 뒤를 바라볼때.. 이 아이의 미소 마저 잃을까 생각들을 주머니속에 구겨 넣고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수진이도 따라 웃는다. 심장이 상큼하게 움직이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래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고 따스하고 밝으니까..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내가 자주가던 카페로 데리고 왔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커피를 주문하고 수진이도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 카페에 와서 처음으로 와플과 아이스크림도 주문해 봤다. 커피를 내오시는 분이 신기한듯 나를 처다보았다. 수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 이야기, 요즘 사는 이야기, 앞으로 진로이야기나.. 뭐.. 그런것들.. 이상하게 지난번 일때문인지 좀더 개인적인 부분들은 물어볼수가 없었다. 집안 이라던지 형제라던지 그런것들.. 조금 용기를 내서.
"혹시 형제있어? 뭐.. 언니나 남동생 같은거 말이야. "
"아니 없어.. 나 귀한집 외동딸이야. 잘 모시고 살아야돼."
그녀의 웃음에 나도 웃게 된다. 외동딸이라니. 역시 좀 유복하게 자랐나 보다. 정말 귀하게 모셔야겠는데.. 
"난 여동생 하나 있어. 내일에 뭐그리 관심이 많은지. 맨날 구박하고 그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쉽게 말이 끊어지는.. 어색한 공기가 잠깐씩 흐른다. 이 간극.. 난 이 간극이 싫다. 너와 나사이를 어색하게 만드는 간극.. 
"커피 어때? 원래 커피는 좀 식어야 맛있어. 너무 뜨거우면 본래의 맛이 안난다고 하더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미소를 짓는다. 조금 지나 천천히 우리는 우리가 사는 학교 주변으로 돌아 왔다. 오늘은 그녀의 집에 초대 되어서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학교 외곽의 집으로 갔다. 미리 준비해놓은 듯한 재료들로 음식을 하고 나도 옆에서 돕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금방 멋진 한상이 차려 졌고 천천히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누가 그랬던가.. 앞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 있으면 '이사람은 왜이렇게 재미없는거야?' 라고 생각하다가도 앞에 있는 사람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루한 사람은 내가 되버린다고.. 이럴때마다 말을 잘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 보이고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진다. 가끔은 그녀가 톡톡 튀는 말들로 나를 이끌어 주지만 역시나 여전히 나는 말 재주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투박한 나의 가방에서 작은 선물을 하나 꺼내었다. 그것은 전부터 조금 준비한것으로 그녀의 집이 횡한걸 느껴서 산 토끼 캐릭터가 들어간 예쁜 머그컵이었다. 
"언제 이런거 준비했어?"
"그냥.. 전에 여기 왔었을때 좀 횡해 보이더라구.."
기쁘게 받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현관 앞에서서 신발을 신는데 그녀가 말했다. 
"연준오빠.. "
"응?"
"너무 무리하지마."
"뭐가?"
"내가 부담스러워 하는건 아닌데.. 선물같은거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됬고.. 내 앞에 있을때 재밋는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해주려고 많이 노력하는거 잘 아는데.. 그러지마.. 오빠가 아무말 하지 않아도 나 충분히 오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거 같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되고 무리하지 마라구.. 나 어디 안가 지금 오빠 눈앞에 있잖아. "
내 마음을 독심술을 하는걸까..? 순간 난 멍하니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내 모습들이 그렇게 티가 났나.. 라고 생각할때쯤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가볍고 짧은 키스를 해주었다. 순간 모든 시간이 얼어 붙은것처럼 느껴졌다.
"잘 들어가 내일 또 보자." 
그녀의 그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을때... 오랜시간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다음날은 무슨일인지 아침 일찍일어나 밥을 해먹고 금방 학교에 나왔었다.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밀린일들을 서둘러 확인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책상도 정리 했다. 교수님께 간단한 부탁을 받아 작은 우편물을 대전으로 부치게 되어서 물건을 들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아침공기는 조금 차가웠고, 해는 많이 떠서 따스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빠르게 움직였고 미대 건물을 지나 우체국 근처로 다가 갔을때쯤, 수진이와 만나던 같은과 선배와 수진이가 같이 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밝은 표정들은 아닌거 같았지만, 알수없는 짜증과 통증이 뼈속부터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벽뒤에 기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Posted by blindfish